지난 며칠 동안은 목에 디스크가 도져서 며칠 다시 침을 맞으러 다녔다. 몇 년 전이었던가. 한 4년쯤 된 것 같다. 어느 날 늦가을에 눈을 뜨니 엉치뼈가 금이 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고관절 부근이었던 것도 같다. 마치 유리창에 돌멩이가 날아와 금이 간 것처럼 기분 나쁘게 번져 가는 통증이 허리 디스크의 시작인 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그게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는 상태로 전개되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경향이 있고, 웬만한 아픔쯤은 별 것 아니려니 하고 넘기는 악습이 있었다.
서른일곱 살까지는 담배도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피웠고, 술은 여전히 소주나 양주 같은 독주를 마신다. 일을 시작하기를 두려워하는 진입 공포증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만, 글감을 머리속에 넣어두고 미루고 미루다 한 번 시작하면 몇 날 며칠이고 끝을 봐야 손을 떼는 벼락치기 형에, 국문학 연구부터, 비평, 그리고 때로는 시나 소설 창작에 이르기까지 하고 싶은 일은 어떻게든 손을 대야 직성이 풀리는 까닭에, 몸을 편히 쉬게 할 날이 없었다. 밤에는 안 자고는 버틸 수 없는 순간까지 잠을 미루다 한순간에 쓰러지는 잠을 자고, 그러고도 잠이 자꾸 없어져 최근에는 다섯 시간쯤 자는 것 같다. 게다가 어떻게나 사람이 잡스러운지 관계하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문학잡지도 만들고, 학회 대표도 하고, 또 다른 학회는 총무를 한다. 문학에, 학교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복잡한 일을 처리하느라 글을 다시 끊었다 쓰고 있다.
한 번 디스크가 번지기 시작하자 며칠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 받고 약 타먹으면 된다 해서 그렇게 했는데,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통에 결국에는 남들 다 간다는 모모한 병원으로 갔다. 심각한 디스크 환자라면 으레 한 번쯤은 들러 수술을 해보려고 하는 유명한 곳이다. 당장 수술을 하란다. 병원에 누웠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밤새 몸부림 친 끝에 정말 수술해야 살 수 있나 보다 하고 의사를 불러 달라는데, 어머니가 말리신다. 디스크 수술은 조심해야 하니, 그래도 참으라는 전갈이다. 차라리 허리뼈를 통째로 빼내고 싶은 심정인데 참 야속한 말씀이었다.
몇 날 며칠을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진통제로, 컴퓨터 유도 신경 치료로 가라앉히고 나니 염라대왕 앞에 갔다 온 심정이었다. 그 아픈 겨울, 체중이 무려 8kg나 빠져서 다이어트에는 제격이었다. 양의학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니 갈 곳이라고는 한의원밖에 없어 이 한의원, 저 한의원 떠돌아다니고, 떠돌아다니는 민간 치료사한테까지 시술을 받고 하면서 세월이 낫게 해준 게 그때 1년의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 아는 분께 맹인 침술사를 소개 받았다. 그 분 집이 서울 신림 사거리 근처여서 자주 다녔다. 침 놓는 비용치고는 꽤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효험이 있는 것 같았다. 작년엔 가는 손이 저리고 어깨가 아픈 목 디스크 증상이 나타나자 재빨리 그 분을 찾아가 악화되는 걸 막기도 했다. 그 사이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며 제법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번에 다시 전화를 드리니, 이사를 갔단다. 그전에는 일층 다세대 주택에 살았는데, 이번에는 아파트란다. 가보니 봉천동 산동네 재개발 아파트의 19층이다. 며칠 다니다 어제 문득 거실에서 창밖을 보니 동네가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게 전망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문득 생각했다. 이 분은 저 전망을 어떻게 즐길까.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높은 전망을 무슨 뜻으로 산 것일까. 그러자, 아, 이 분은 바람의 감촉으로 그것을 느끼고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감촉은 얼마나 새롭고도 생생한 것일지, 어림짐작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