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규 리
저 소리에 어떤 것이 씻겨 내려갈까 염려하면서
새벽 잠 속에서 오래 빗소리가
불길한 기별이
한 동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다
가능과 불가능이 함께 쓸려나간
매운 연애여
걸었던 길이, 밥집이, 나무가
몰라
영화처럼, 소설처럼
세 시는 두시를 몰라, 동은 서를 몰라
그리하여 한 동네가
느닷없는 작별이
그 시간 거기 나무가 서 있기나 했을까
거침없이 쏟아져 휘몰아가 버리는 폭우와 그 물줄기의 흐름을 보면서 시인은 한 생의 사랑과 영화처럼 소설처럼 꿈 꿔왔던 것들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빗물에 휩쓸려 가버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 느닷없는 작별과 부재의 순간들이 닥쳐오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고 느끼면서 사랑과 한 생의 쓸쓸함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이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