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동북부의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라는 곳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설국`의 고향이다. 이곳은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옛날 같으면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곳이다.
`설국`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일본에 갔을 때, 요미우리신문 1면에`세설`의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올랐다는 기사가 났다. 그러나 결국 그 세대의 일본쪽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로 낙착된 것이었다.
왜일까.`설국`은 두 번은 읽은 것 같은데, 줄거리 같은 것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신에 작품 전면에 흐르는 어떤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주인공 시마무라와 게이샤 고마코의 연애 이야기는 줄거리도 분명치 않고, 그들의 성격도 명료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기억에 그렇다는 것이다. 대신에 내 머리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작품에 가득 차 있는 눈과 우울 같은 것이다.
에치고유자와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탔다. 버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으면서 소설을 집필했다는 여관으로 간다. 에치고유자와는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시로서 스키 타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버스를 타고 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아서 나는 다카항(高半) 여관으로 올라가는 언덕 밑에 섰다. 여기서부터 나는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다카항은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걸어 올라갈수록 도시의 모습이 눈에 점점 더 잘 들어오게 되어 있다. 도시 한가운데에 높은 고가 철로가 지나가고 있어 아름다울 게 없다. 그러나`설국`의 고장답게 눈이 쌓여 운치가 있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 도시에서 1930년대, 1940년대의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그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30년대 중후반에 일본은 중일전쟁을 벌이던 참이고, 태평양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는 그런 시대와 동떨어진 소설을 썼다. 일본 춤을 연구하는 인물이며, 게이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전쟁을 외면한 것이 오히려 그가 시대를 응대하는 방식이었다면, 그는 진실한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카항 여관 2층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물렀다는 방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나는 다다미방 한가운데에 다탁을 앞에 놓고 잠시 앉아 바깥에 가로막고 선 산을 바라본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다카항을 나와 언덕을 걸어 내려와 에치고유자와 역까지 걸어가며 나는 이것저것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겨두는 한편으로 왜 한국엔 노벨문학상이 돌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시대라는 것과 너무 많이 타협해 버리는 한국문학의 풍토를 생각한다. 시대와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사실은 그 시대와 타협하는, 또 다른 포즈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정말 불화를 겪고 있는 사람은 말하거나 꾸짖는 대신에 방에 들어가 글을 쓸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생각을 들어주지 않을 때, 아무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을 때, 나는 나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해서 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과 문학에서 침묵의 가치가 빛나는 이유일 것이다.
니가타로 갔던 나는 다음날 에치고유자와를 지나쳐 다른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탔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에 눈이 내렸다. 천지에 가득 찬 눈 때문에 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있었다. 나무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움츠리고 눈을 맞으며 말없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