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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소중하다

등록일 2013-01-10 00:06 게재일 2013-01-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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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나는 디스커버리 애청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지구 45억년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지구에 어떻게 생명체가 나타났으며, 공룡은 어떻게 해서 멸종됐고, 인간은 어떻게 이 땅에 출현하게 되었느냐를 이 프로는 참 생생하게 알려 주었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한 가지. 예전에는 공룡이 멸종하고 나서 포유류가 나타난 것으로 알았는데, 땅속 생활을 하던 포유류가 소행성 충돌로 인한 화마를 피해 지구를 지배하는 주인공으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하기는 어렸을 적에는 공룡과 인간이 함께 사는 원시시대 만화를 보았으니 내 기억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인간이 이 땅에 접붙이고 그 생명이 이어지고 이어져 `나`라는 존재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면, 그런 사연이 예삿일은 분명 아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프로는 삶이 참 허무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은 지구 45억년 나이에 비하면 찰나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 게 아닌가. 이 지구 환경이 다 파괴될 지경이 돼서 지구인들이 먼 지구 형제 행성을 찾아 떠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 일이 언젠가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 전에 먼저 지구가 원자력,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버리거나, 소행성 충돌로 화마에 휩쓸려 버릴지도 모르지 않는가.

사실 인간이 역사라는 것을 지으며 살아온 것도 인류 역사 전체에 비추어 보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가끔 그리스 비극`오이디푸스`나 `안티고네` 같은 것에 매료되기도 하는데, 이런 지혜를 담은 문헌들이라는 것도 과연 얼마나 가겠는가.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천 년, 이 천 년 후에 그것이 남을지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온갖 훌륭한 종교들도 저마다 삶에 대해 깊은 통찰을 펼치고 해석력을 자랑하지만, 그런 종교라는 것도 과연 수천 년 더 갈 것인가.

나는 마음속에 언제나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영육이 하나로 영원히 살 수 없다면 영혼만으로라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육체가 죽음과 더불어 홍진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영혼에 저 갈망하는 영원성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 초월적 종교들의 기원이 된 것은 아니겠는지?

그러나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간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이는 아무리 훌륭한 종교인이라 해도 오히려 신 앞에, 영원성 앞에, 너무 거만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 너머의 영원성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자기의식을 품고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이 자기의식이라는 것도 한갓 기만에 불과한 것인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삶의 기쁨과 고통을 맛보며, 하루하루 시간적인 존재로서의 생명적 과정을 통과해 가고 있다.

그런 느낌을 중시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나는 우리가 이 지상의 삶을 더 소중히 만들어갔으면 한다. 한국 사람들이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극히 현세적이라는 한국인들의 심성에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삶이, 우리들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충분히 공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의 삶이 아무렇게나 취급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름다운 꽃송이가 떨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바로 그 심정으로 내 삶과 타인들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이 삶을 함께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펼쳐야만, 허무하게 목숨을 끊는 이 시대의 저주받은 유행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용산이나 평택을 생각할 때 나는 이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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