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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덕담 “어울려 살아가라”

등록일 2013-01-03 00:05 게재일 2013-0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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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겨울 눈 내린 대전 중앙시장통 골목길 저녁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나는 금방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져 이곳에 들렀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는 두어 시간 동안 역에서 가까운 이곳을 돌아보기로 한 것이다. 옛날에는 더 어렸을 때 크던 공주에 자주 갔는데, 이제 공주는 맘을 못 내고 대전의 추억 어린 곳들만 둘러보게 되는 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사람은 현실과 싸우지 못하는 법. 나는 이 악습을 언제 버릴지 알 수 없다.

겨울 저녁은 어딘가 쓸쓸하고 추워, 따뜻한 곳을 찾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나는 대전역에서 옛날 도청으로 통하는 큰 길을 걷다 중앙시장 통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곳에 이른바 `먹자거리`가 있다. 나는 오늘 이 먹자거리며, 생선 파는 곳들을 둘러보고 싶다.

옛날에 몰랐던 사실 하나. 이 먹자거리에는 유난히 지명을 딴 가게 이름이 많다는 것. 그 골목 쪽으로 몸을 틀자 처음에 보이는 상호는 안영집. 그 옆은 함경도집. 또 그 옆에는 강원도집. 그런데 이 강원도집에는 전라도집이라는 상호도 함께 붙어 있다. 여기서 좁은 골목 사거리를 하나 건너뛰면 전주집. 그 옆에는 만경집. 아마도 만경강에서 유래한 지명인 듯하다. 그 옆에는 단골집. 그 옆에는 별미집. 또 그 옆집은 백천순대. 만경집과 골목을 사이에 둔 앞집은 옥천집이다. 그 옆에는 은하다방이 있고.

나는 이 가게들이 다 무엇을 팔고 있나 새삼스레 헤아려 본다. 소머리국밥, 보신탕, 순대국, 설렁탕, 닭도리탕…. 다들 육식이다. 그런데 파는 건 육식인데, 사는 모양은 어쩐지 초식동물들 같다. 한 골목에 여러 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고향 음식을 팔면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모양이니 경기체가식으로 물어, “이 풍경 과연 어떠한지요?”

이 먹자골목 풍경을 가슴에 담아두며 걸어간 나는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그곳은 생선, 야채를 파는 곳이다. 두꺼운 옷을 입고, 작은 난로 하나씩을 끼고 앉은 아주머니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나는 야시장을 좋아하지만 여간해서는 찾아가지 못한다. 생선요리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스스로 다듬어 요리해내긴 힘들다. 나는 어물전에 가지런히 놓인 생선들을 정다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가오리, 홍어, 동태, 아귀, 미꾸리, 쭈꾸미, 쏘가리 같은 애들은 나도 다 안다. 박하지라고 하면 충청도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겠지만 게를 간장에 담은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어물전에 쓰인, 모르는 말들을 읽어본다. 호끼알. 이것은 나중에 보니 민태라는 생선 알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니라고 쓴 것은 새의 일종인 고니가 아니라 표준어가 `곤이`인 고니다. 물고기 배속에 든 알뭉치나 새끼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불메기는 메기의 일종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잡혀와 어물전에 누워서도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입이 마치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 같다. 이 골목이 끝나는 곳에는 정육점이 하나 붙어 있는데, 간판 중에 국내산 암퇘지 쫄데기라고 쓴 것이 있다. 쫄데기란 돼지 앞다리나 뒷다리살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먹거리들을 팔고 있는 사람들도 쳐다본다. 나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내 궁금해 하는 것에 답해줄 수 없다는 듯 딴청들을 피우고 있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묵묵히 앉아서 마지막 손님을 기다릴 뿐이다. 나는 이 골목을 다 빠져나와 큰 거리 쪽으로 나간다. 어둠 속에 가스라이터를 파는 사람이 앉아 있다. 이 사람은 몇 개를 더 팔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일까 하고 궁금해진다. 이 사람이 오늘은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사람끼리 어울려 사는 골목에서 혼자 떨어져 있어 그런가 보다.

어울려 살아가라. 모르는 곳에서 잡혀온 애들처럼. 그것을 팔아가며 한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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