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문재인 후보가 절반은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현 정부에 대한 염증이 그렇게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는 실패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만약 투표율이 77%를 넘어갔다면 문재인 후보는 선거에 지고도 말춤을 춰야 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번 선거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세대 간 대립, 지역 간 대립이 너무 크게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두 단절 때문에 차라리 눈에 덜 뜨인 계층간 대립도 그에 더하면 더했지 못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선거 기간 내내 좌절과 증오의 목소리가 여론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그렇다. 여권에서는 야권 세력 전체가 종북 세력이라도 되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후보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말들도 많이 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필자는 야당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보았다. 선거기간 내내,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야당은 좌절과 증오에 호소하는 전략에 깊은 유혹을 느끼는 듯 했다. 젊은이들, 20~30세대들, 이른바 88만원 세대의 좌절감에 호소하는 정치는 투표율이 얼마가 되면 말춤을 추겠다든가, 건전지를 주겠다든가 하는 식의 선동적 구호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목소리는 귀에 잘 들리지 않고, 현 정부에 대한 반감에 호소하는 단순한 전략이 계속되는 바람에, 원래부터 여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 외에, 여(與)든 야(野)든 설득력 있는 호소를 하는 쪽에 마음을 주곤 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정희 후보가 토론회에 나와 박근혜 후보를 냉소와 조롱을 섞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을 보고 속시원해 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한 유력 정당의 후보를 저렇게 예의 없이 대해도 되나 하는 상식적인 물음을 던지며 상황을 우려하는 분들이 훨씬 더 많았으리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미 지난 총선 때, 야권이 자신들이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선거를 엉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을 냉정한 심정으로 지켜봐야 했다. 그때 필자가 가장 우려한 것은 야권에 이미 야당적인 입지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이 배타적, 독점적인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권력은 여당이나 여권만 가진 것이 아니다. 야당이나 야권도 그에 상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을 창조적, 긍정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원래 자신들이 누리는 힘을 확장하는 쪽으로 사용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다.
야권은 총선 패배 후 야권이 걸어온 길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안철수 후보는 그가 하는 말이 새로워서가 아니라 그가 걸어온 길이 새로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각광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안철수라는 기호로 대표되는 사람들을 배제한 채 대선에 뛰어든 야당, 야권의 `기득권` 세력은 새로움과 창의력 대신에 약자들, 패배한 이들, 좌절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사람들의 부정적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그들을 지지한 국민들에게 이번 선거는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야권, 야당에서도 대선때 뭔가 새로운 말을 많이 만들어 내려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서 졌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새로운 말을 해도 사람이 그렇게 새롭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야권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은, 새 출발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