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싸움을 위해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마지막 변수는 유언비어`라고 했다. 전투를 목전에 두고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거수일투족이야 말로 마지막 경계대상이다.
전쟁의 승패뿐 아니라 유언비어가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많다.
고구려말에 `나라가 900년이 못돼 80 장군에게 망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바야흐로 고구려는 900년 역사를 맞이하고 있었고, 당의 원정군을 이끌던 이세적의 나이가 여든이었다. 당은 이 소문을 적극적으로 퍼뜨렸고, 고구려는 이 소문에 흔들렸다. 백제말에는 땅속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백제는 가득 찬 달이요, 신라는 새로 차는 달`이라고 적힌 글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득 찬 달은 이지러지는 일만 남았고, 새로 차는 달은 보름달이 될 테니 곧 백제가 망한다는 뜻이었다. 후고구려말에도 왕창근이란 상인이 거울을 저자에서 샀는데, 해가 비추면 거울에 글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글을 풀이하니 `송악에서 난 왕건이 철원에서 일어난 궁예를 물리치고 신라를 차지한 뒤 압록강까지 지배한다`는 뜻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같은 유언비어들은 민심을 여지없이 흔들어놓았고, 흔들린 민심을 파고 든 새로운 세력이 나라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유언비어의 파괴력은 실로 무섭다. 현대 선거전에서 유언비어는 바로 흑색선전을 지칭한다.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방을 모략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정치적 술책을 일컫는 흑색선전은 선거전에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진위여부를 가릴 시간여유가 없을 때 그 효과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흑색선전으로 운명이 바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다. 요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원유세를 다니고 있는 이 전 대표는 “네거티브 공작과 흑색선전은 민주정치를 죽이는 정치적 암으로 철저히 배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지금 민주당의 전신인 여당이 제기한 이른바 `3대 의혹`사건에 휘말려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57만여표, 불과 2.4% 차이로 패했다.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쳤던 장남 정연 씨의 병역비리 은폐의혹을 비롯한 3대 의혹은 선거가 끝나고 난 뒤 모두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이미 선거는 끝난 뒤였다. 운명이 바뀐 것이다. 15대·16대 대선에 두번이나 야당 후보로 나섰다가 흑색선전에 고배를 마셨던 이 전 대표의 회한은 깊고 깊었다.
`초박빙`혼전 양상으로 보도되고 있는 이번 대선은 어떻게 결론날까. 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흑색선전은 통상 세불리를 느끼는 측이 유리한 후보를 공격할 때 동원된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겨냥해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여론조작 의혹,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유포되고 있는 박 후보의 아이패드 커닝논란, 종교단체 `신천지`와의 관련 의혹 등을 퍼뜨리는 걸 보면 미루어 짐작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흑색선전과는 다르지만 네거티브 전략이란 것도 있다. 네거티브는 `부정적`이라는 사전적 의미외에 상대방이 당선되지 못하게 할 의도로 비난 또는 공격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흑색선전이 부도덕한 여론왜곡행위인 것과는 달리 네거티브전략은 상대의 오류를 일깨워주고 평가하고 판단하게 하는 일련의 개선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정도가 지나치면 흑색선전과 다를 바 없는 게 문제다.
이번 대선을 `쥐락펴락`했던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최근 박-문 두 후보의 네거티브 선거행태를 이렇게 질타했다. “과정이 이렇게 혼탁해지면 이겨도 절반의 마음이 돌아선다. 부끄러운 승리는 영원한 패자가 되는 길이다. 국민은 그런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두 후보 모두 네거티브 없는 선거를 약속하지 않았나. 국민들도 깨끗한 승부를 원한다. 그게 새정치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