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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에서 살아남기?

등록일 2012-12-06 21:24 게재일 2012-12-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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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세상 사는 일에는 늘 싸움이 뒤따라 다니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그저께 토론이 있었던 것도 싸움의 측면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계절이 되면 노사 양측이 타협하지 못하고 일전을 벌이는 것을 보는데, 이것도 다 세상살이의 싸움이라면 싸움이다.

계급이나 계층, 성별이 달라서 집단적인 갈등을 빚고, 더 많은 것, 더 유리한 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의 필연이라면 필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단지 집단적 차원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할 때도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고독한 경쟁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쟁은 곧 싸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싸움은 일반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학교에도 싸움이 있다. 학생들끼리도 일진이다 뭐다 해서 싸우고, 반장이 되기 위해 싸우고, 1등을 하기 위해 싸운다. 어떤 사람을 뽑으려고, 또 뽑지 않으려고 싸운다.

나는 이 학교 안에서 일생을 지내다시피 하는데, 그 여정의 어느 때인가 싸움과 같은 경쟁 속에서 밀리고 밀려 왕따 같은 신세로 전락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밀려난 사람은 학교에서도 가장 보이지 않는 곳, 가장 초라한 곳에서 음지식물처럼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자에게는 대학 시절에 같은 하숙밥을 먹었던 후배까지 인사를 하지 않고 지나간다. 그에게는 장학금이나 조교 자리 같은 것은 제대로 돌아오는 법이 없다. 이 질긴 악연은 대학 교수가 되려고 원서를 들고 다닐 때까지 계속된다. 한 번 링 밖으로 밀어낸 자가 혹시라도 링 안으로 들어올까 저어한 나머지 끊임없이 밀어낸 자를 또 밀어내는`이지메` 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반복된다.

나는 그 어떤 때 단 한 가지 진리만을 가슴에 안고 버텨내야 하는 때가 있었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한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소외시킬 수 없다. 자기가 자기를 버리는 순간에서야 그는 완전한 고독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그에게는 아직 살아나갈 힘이 있다. 다 졌다고 생각되는 싸움에서도 이길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나는 지금 생각한다. 싸움에서는 늘 이겨야만 하는 것일까. 싸움에서 지는 길을 택할 수는 없는 것일까. 싸움이라는 것을 세상살이에서 아예 없애버리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라와 나라끼리 전쟁을 치르게 되면 한쪽이 죽지 않으면 다른 한쪽이 죽어야 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하지 말라 하고 기독교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라 하건만,`호국불교`라는 말이 있듯이 불가피한 싸움에 나가지 말라는 법이 없고, 자국에 테러를 가한 집단을 원조한다고 해서 아예 도륙을 내버리는 일도 그치지 않고 있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승리한 자가 기쁨을 만끽하는 순간에 패배한 자는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신념을 가지고 대들어야 할 싸움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무리 영광스럽게 살아도 결국 삶이란 죽음 위에 떠 있는 조각배와 같다. 나만이 아니라 남도 다 똑같은 조각배들이다. 내가 이 바다 위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면 남도 그럴 것이다. 내가 더 어려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면 남도 똑같이 그럴 것이다.

내게는 지금 어떤 어려운 일에서 무엇인가의 결정을 놓고 싸울 때 나 아닌 쪽의 처지와 아픔을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서울은 희디흰 눈이 온 천지를 감싸주고 있다. 싸움의 논리를 덮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모포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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