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집안행사가 있어 시골에 갔다. 하룻밤 자게 돼 늦은 밤 각지에서 온 친척들과 이야기를 하다 시원한 밤바람을 쐬기위해 바깥으로 나왔다. 집앞 대문을 나서자 그야말로 칠흑이다. 시골 외딴곳이라 동네가 몇 집 안돼 그 흔한 가로등도 보이지 않는게 완전 깜깜이다. 시골을 연상시키는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게 멀리 새로운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조금은 차갑지만 시원한 바람은 도시에서는 느낄수 없는 어떤 것을 보상받는 듯했다. 그 날따라 달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유달리 별이 많이 보였다. 별을 본게 얼마만이던가. 신기한 듯 별을 보던중 눈에 익은 별이 보였다. 북극성이다. 북두칠성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북극성. 7개의 별 중에 가장 빛나는 별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숭배의 대상이 돼 왔다. 수억년 전부터 북쪽하늘에 자리잡고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는 어부를 비롯, 전쟁터에서 낙오된 병사들, 순례자들에게 묵묵히 이정표가 돼오고 있는 북극성. 인간사의 부귀영화도 시시비비에도 간섭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하고 있을뿐이다.
북극성을 보면서 잠시 우리의 인간사를 되돌아봤다. 우리는 남을 이기기위해 경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속에 살고있다. 자신을 높이고 남을 깔아뭉개야만 대접을 받는 무한경쟁이다. 이 무한경쟁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바로 정치판이다. 정치판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1등이 돼야만 온갖 권력과 돈을 거머쥘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이 불과 20여일도 채 남지 않은 요즘 우리 정치판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오래전부터 대선가도를 달려온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도전이 거세다. 문 후보는 우여곡절 끝에 후보단일화에 성공, 박근혜 후보를 넘겠다는 생각이고, 박 후보는 후보단일화를 정치적인 야합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세모으기에 열을 올린다. 어느 후보를 보더라도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기보다 오직 자신의 권력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근본목적이 정권을 창출하는데 있다지만, 당리당략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듯한 인상을 받을 때는 정치판에 대한 환멸이 느껴지기도 한다. 486세대라면 고교시절 `큰바위얼굴`이란 글을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호오손의 단편소설로 여러 가지 인간상을 보여주면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추구한 작품이다.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란 얘기를 들으며, 자신도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간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싸움 잘하는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친다. 즉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있는 어니스트가 큰바위 얼굴이라는 것. 하지만 어니스트는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로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떠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많은 대통령 중 호치민 처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은 나오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중 두명은 비명횡사하고, 한명은 망명지에서 죽었다. 그리고 한 명은 IMF사태를 불러왔고, 두 명은 감옥생활을 하는 등 그야말로 줄줄이 해외토픽감이었다. 현직 대통령도 그 많은 돈을 기부하고도 퇴임후 사저문제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이번에는 퇴임 후에도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북극성과 큰바위 얼굴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보면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