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대전에 있는 한의원에 간 적이 있다. 애초부터 한의원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대전은 내가 성장기를 보낸 곳이다. 가끔 혼자 아무 이유 없이 그곳에 가고 싶은 때가 있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이런 때는 부모님조차 뵙지 않는다. 잠행을 하듯이 옛날 추억의 거리들을 둘러보고 돌아오게 된다.
대전역에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카데미 극장이라는 옛날 극장이 아직도 간판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뒷문 쪽으로 난 골목으로 접어들면 여인숙 촌이 즐비하다. 이곳은 왠지 은밀한 거래들이 이루어지고 있을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이 골목을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한의원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가 나타난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단지 추억을 곱씹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상념이나 즐길 요량으로 이 거리를 걸어갔다. 그러다 한의원들이 문을 열고 있는 곳까지 이르게 됐다. 그러자 갑자기 만성이 된 허리 디스크가 악화돼 몸이 썩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을 한 번 맞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떤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의원 주인은 나이가 무척 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노인 중에도 힘이 많이 달아나버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손님도 없어서 금방 침을 맞게 됐는데, 침을 아주 잘 놓는 분이었다. 침을 맞은 채로 한 십 분 있다 나오니 이 노인 분은 웬 중년의 여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여인이 노인 드리려고 김밥을 싸온 모양인데 그 모양이 심히 가지런했다. 나는 두 사람이 정답게 김밥을 나눠 먹은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상상해 보았다.
그로부터 몇 달이나 지났을까. 나는 똑같은 심정으로 대전을 다녀가게 되었다. 그러자 침 잘 놓던 노인 분이 생각났고, 그 한의원을 다시 찾게 되었다. 이번에는 한의사 노인과 중년 여인이 함께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아마도 부부인 듯했다. 나이 차이는 꽤나 많아 보이는데, 그래도 부부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선 한참 대전 생각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 별 취미는 생겨났다가도 사라지고 사라진 듯했다가 다시 솟아나게 마련이다. 며칠 전에 다시 대전에 가게 됐다. 마침 읽어야 할 토마스 하디의 `테스`를 들고, 새마을호를 타고 두 시간을 여유 있게 즐기며 대전으로 갔다. 6호차, 7호차 사이 빈 곳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책을 읽다가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가 썩 좋았다. `테스`를 쓴 작가는 참으로 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대전에서 다시 그 거리를 지나가게 되자 한의원 생각이 났다. 굳이 침을 맞을 생각도 아니면서 다시 그곳을 찾아들어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노인 혼자 구부정하게 정수기 물을 받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어딘가 몸의 기운이 완전히 달아나버린 것 같았다. 한 일 년 사이에 노인은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노인이 저렇게 상해 있는데, 그 중년의 여인이 옆에 같이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한의원이라면 아무 용무도 없이 들어가 있을 수는 없다. 나는 다시 침을 맞으러 왔노라고 말씀 드렸다. 그러자 노인은 말을 할 기운조차 없는 사람처럼 손을 천천히 휘저으며 침을 놓지 않는다는 표시를 했다. 그 모습은 말을 안 하는 게 아니고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었다.
한의원을 돌아서 나오면서 그 중년의 여인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상상해 보았다. 노인이 저렇게 폐인이 되다시피 한 것은 필시 그 여인이 보이지 않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러자 세상의 인연은 다 저렇게 맺어졌다가 흩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허무한 생각이 머리를 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