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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등록일 2012-11-06 21:03 게재일 2012-11-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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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논설위원

가을이 깊어간다.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소망하게 되는 계절이다. 쓸쓸한 계절속에 혼자 되뇌어 보는 시가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중략)//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하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다. 이 시에서 `이름`이란 존재 가치나 의의를 뜻한다. 이름이 주어져야 비로소 사물은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길섶에 있는 풀들은 구체적인 이름을 얻지 못하고 그냥 잡초라고 불린다. 민들레나 개나리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민들레면 민들레지 따로 붙여진 이름이 없다. 돌멩이는 그냥 돌멩이고, 바위도 바위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하나하나가 유의미한 개체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바로 목적 그 자체다.

미국의 한 초등학교에 헬렌이란 선생님이 있었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우선 학생들에게 그 반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적은 명단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난 뒤 선생님은 “호감이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명단에서 그 학생의 이름에 표시를 한 후 제출하라”고 말했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 학생들은 모두 자기가 적은 명단을 선생님에게 제출했다. 선생님은 별도의 종이에 각각의 학생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표시한 다른 학생의 이름을 적어서 새로운 명단을 만들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이 만든 명단을 나눠줬다. 대부분이 2쪽 정도의 긴 목록이었다. 명단을 받은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학생 중 한명이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헬렌 선생님과 함께 같은 학급이었던 학생들 모두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전사한 학생의 부모는 죽은 아들의 군복 상의에서 발견한 2쪽 분량의 명단을 선생님에게 보여줬다. 손때가 묻어 닳을 대로 닳은 학창시절의 명단이었다. 그 때 한 여학생이 가방에서 자신의 명단을 꺼냈다. 그녀도 항상 이 명단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준 것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모든 학생들이 품안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명단을 펴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장례식장에는 따뜻한 미소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처럼 소중한 일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 소유자가 누구일까. 정답은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이다. 그는 시베리아를 포함한 러시아(1707만㎢)에 비해 두배 더 큰 달(3800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택지법을 근거로 1980년 11월20일 샌프란시스코 지역 법원에 가장 먼저 달의 소유권을 청구해 승소했다. 미국 정부는 그에게 달 소유권 증서를 발급했고, 그는 달나라 대사관(Lunar Embassy)을 설립, 달 부동산 분양에 나섰다.

재미있는 것은 데니스에게 20달러를 주고 달에 있는 200만평의 땅을 샀다는 사람의 얘기다. 그전과는 다른 눈으로 달을 바라보게 됐다는 것이다. 달이 훨씬 더 아름다워보이고, 달이 4분의3으로 둥글게 떠 있으면 괜히 즐거워진다고 했다. 달이 그에게 `꽃`이 되었거나 `눈짓`이 됐다는 얘기다.

한달 남짓 남은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떤 이름을 불러줄까. 어떤 후보가 한국의 `꽃`이 될까. 12월 겨울 바람속에 피워낼 그 꽃은 과연 어떤 눈짓을 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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