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역사 문제를 생각한다

등록일 2012-11-01 21:36 게재일 2012-11-01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최근 여러 문제와 관련해서 역사 인식 문제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복잡한 현대사를 헤치고 나왔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고, 그만큼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도 많다.

나는 역사 문제를 역사가들처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 의견을 정면에서 피력하는 것을 피하곤 한다. 역사가들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뭘까? 그것은 인물의 행위를 역사라는 거울에 비춰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는 역사가들 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역사 속의 인물을 판단하는 것 역시 그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속성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역사적 신념에서 벗어나는 인물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역사가는 친일 행적이 있는 인물, 독재에 협력한 인물들을 뱀 보듯이 하고, 또 어떤 역사가는 좌익 활동을 한 인물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빨갱이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이런 대쪽같은 판단과 의지를 존중하는 편이지만 특정 인물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해방 이후에 좌익 활동을 하다 월북해서 6·25전쟁에 가담한 인물이 있다고 하자. 역사 속에서 그런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그가 일제 시대에 좌익적인 사회운동을 하다 일경에 검거돼 투옥된 일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또 친일 경력이 농후한 인물이 해방 후 한국 사회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수도 있다. 이런 인물 역시 한둘은 아닌데, 이런 인물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는 뭔가?

나는 인물의 역사적 행위 과정을 판단할 때 여러 측면을 고려하는 종합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질주의적인 사고, 즉 어떤 잘못된 점이 있기 때문에 인물을 원천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각은 우리나라와 같이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친 사회에서는 쉽게 통용되기 어렵다.

명쾌하고 투명한 판단과 처리가 가능하려면 잘못된 점을 즉시 시정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했다. 해방 이후에 극단적인 친일 활동을 벌인 인물조차 사회의 중심무대에서 밀어낼 수 있는 힘이 없었던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또 북한에는 아직도 6·25 전범들이 그득하지만 그들을 어떻게든 처벌할 현실적 도구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인물은 사회적 환경의 변화를 견뎌가며 오래 살아남는다. 많은 일을 해나가고, 그 가운데에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있다.

문학 관계자가 하는 일은 역사가가 하는 일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옳고 그름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는 문제, 또는 그 이전의 문제를 다룬다. 어떤 분들은 이런 문학의 역할이나 가치를 불만스럽게 본다. 왜 더 투명하게, 명쾌하게 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자명한 것이 내일은 반드시 자명하지 않는 것이 된다. 오늘 그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내일은 바른 것이 된다. 때문에 문학은 지금 시비를 판단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없다. 더 포괄적으로 내면적 정황까지 다 살펴야 사태의 진실에 가까운 면이 드러나고,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총체적인 판단에 가까운 진단을 할 수 있다.

최근에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반복은 싫다는 것이다. 과거는 잘 됐든 잘못됐든 우리 것이다. 우리가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 우리가 과거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과거가 오늘에 반복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유신체제도, 노무현 정부도 반복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 내일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바람 아닐까. `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