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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서 500년 `때때옷 효심` 기린다

권광순기자
등록일 2012-10-19 20:59 게재일 2012-10-1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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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 이현보 `애일당 건립 500주년 학술대회·기로연` 개최
▲ 농암 이현보가 1519년 안동부사로 재직할 당시 성별과 신분을 불문하고 80세 이상의 노인을 모시고 향연을 베푼 화산양로연(花山養老燕).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안동】 500여년 전 가을 어느 날, 칠순을 바라보는 백발노인이 때때옷(색동옷)을 입고 아흔이 넘은 아버지 앞에서 춤을 췄다. 안동 도산면 분천리 바위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애일당(愛日堂)에서 펼쳐진 일이다. 당시 때때옷을 입고 춤을 췄던 이는 강호문학의 창시자 농암 이현보(1467~1555)이다.

한국국학진흥원과 예안향교는 `때때옷의 효심` 농암을 기리기 위해 18일 오전 10시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애일당 건립 5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및 기로연(耆老宴)을 개최했다.

안동시에 거주하는 80세 이상 남녀노인 150명을 초빙한 이번 행사는 농암의 17대종손 이성원(60)씨가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는 등 당시 노인들을 공경하는 향연을 재현했다.

농암은 효심은 각별했다. 1512년 그는 늙으신 부모를 위해 안동 도산면 기슭에 정자를 짓고 `애일당`이라 이름 붙였다. 애일은 `하루하루의 날을 아낀다`의 뜻이다. `애일당`이란 `부모가 살아계신 나날들을 아끼는 집`이 되는 의미로 농암은 나이 드신 부모를 봉양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한 심정을 `애일`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특별한 날이나 명절 때마다 아우들과 함께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늙으신 부모와 마을 노인들을 정성껏 모셨다. 이처럼 농암이 실천한 효문화는 가족과 친족에 국한되지 않고 마을공동체 나아가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인류적 애민사상이었다.

실제 기록에 따르면 1519년 안동부사로 재직한 농암은 성별과 신분을 불문하고 80세 이상의 노인을 모시고 화산양로연(花山養老燕)을 개최했다. 당시 남녀귀천을 가리지 않고 순전히 연령만을 따져 노인들을 초대한 농암은 이곳에서도 고을 원의 신분이지만 때때옷을 입고 춤을 춘 당시로서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지만 파격적인 행사였다.

1533년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 홍문관 대제학(정2품)의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지만 농암은 자신이 세운 애일당에서 아버지를 포함해 노인 아홉 분을 모시고 때때옷을 입고 춤을 췄다. 아홉 분의 노인이 애일당에 모였다는 뜻에 `애일당 구로회(九老會)`라고 이름도 지었다. 특히 1569년 퇴계 이황 선생도 69세의 나이로 구로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이어 온 구로회는 1979년에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당시 농암의 16대종손 이용구(李龍九·1908~1998)옹이 회원이었다. 이처럼 농암의 부친 이흠을 중심으로 결성된 구로회는 그가 세상을 뜨면서 농암 자신이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이후 아들과 손자, 후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500년 동안 농암가문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했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효문화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면서 “이를 위해서 혈연중심의 전통적 효사상에서 탈피해 모든 인류를 아우를 수 있는 세계보편적 효문화로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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