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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그리 멀지않다

등록일 2012-10-18 20:45 게재일 2012-10-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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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중국의 모옌으로 결정났다. 말로는 말하지 않고, 글로나 말하겠다는 뜻에서 필명을 말 막자, 말씀 언자, 莫言으로 했다는 작가다. 우리에게는 장예모 감독이 연출한 영화`붉은 수수밭`의 원작자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작가 이름만 가지고는 낯설게 느낄 작가다.

`붉은 수수밭`을 본 것은 한참 된 일인데, 화면에 흐르던 중국적인 붉은 색채와 지독한 고량주 냄새는 생생하기만 하다. 주연을 맡은 공리는 이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그 뒤로 숱한 명작들에 출연하는 명배우가 되었다.

모옌에게 명성을 선사하고, 끝내는 그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까지 만들어준, `붉은 수수밭`의 원작 이름은 `홍까오량 가족`이라는 상당히 긴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연작 장편소설로 영화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 첫 번째 연작이라 할 제1장 `붉은 수수`에 대부분이 들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중국에 노벨문학상을 안긴 모옌이라는 작가는 과연 어떤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서구인들은 역시 중국에 대해 어떤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일찍이 펄벅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작품이 `대지`였음은 무슨 뜻일까? 서구인들에게 중국은 광활한 대지, 황원, 그 위에 터를 잡고 자연-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 중국은 역사-인간 이전에 자연-인간의 모습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 그래서 역사-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연-인간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중국인들의 초상을 접하면서 예술미를 느끼고 감동을 받는 모양이다. `대지`가 그리고 있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었고, 이 `대지`의 풍경화가 바로 이 모옌의 `홍까오량 가족`에도 여실히 담겨 있음을 본다. 그러니까 `홍까오량 가족`은 서구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중국인의 심성을 가장 그럴 듯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지극히 `반중국적인`소설을 쓰는 중국계 귀화 프랑스인인 가오싱 젠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중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아예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작가다. 나는 그의 장편소설 ` 혼자만의 성경`을 통독했는데, 문화혁명기에 대한 이 작가의 처절한 고발과 비판에 전율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작가는 그 반체제적인 철저함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옌은 소설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인정하는 듯한 화자의 어조가 말해주듯이 체제내적인 속성이 있다. `홍까오량 가족`은 중국인들의 빛나는 항일 반제 투쟁이라는 이념에 결부돼있다. 거기서는 중국주의의 냄새가 나고, 중국식 속류 사회주의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런데도 왜 서구인들은 그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던 것일까?

모옌 소설은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에도 불구하고 자연-인간의 모습을 풍요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속에서 인간들은 대지가 부여한 강인한 생명력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때로는 죽음마저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 수단이 된다. 그것은 더 많은 생명을 번성하게 한다.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이 카자크인들의 생명력을 보여줌으로써 역사-인간에 대한 자연-인간의 승리를 보여주었다면, `홍까오량 가족`역시 훌륭한 점이 있다. 모옌은 작품을 쓸 때면 늘 붉은 수수밭 들판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곤 한다고 한다. 성공하면 대지를, 고향을 떠나는 작가들과 달리 그는 늘 그곳으로 돌아가는 진정성이 있다.

한국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못 탄다고 야단들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 작가들이나 우리들 자신이나 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이 돼야 한다. 우리가 서구인들이 찾아 헤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노벨의 문학상도 그렇게 먼 남의 일만은 아니게 될 것이다. 얼추 많이,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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