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 아리랑` 고요아침 펴냄 서상은 지음, 119쪽
인간은 원래 자신이 어떤 영원하고도 완전한 세계, 그러니까 천국이나 극락 혹은 선경(仙境) 같은 곳에 살았거나 혹은 살고 있어야 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이 지상에 유배돼 이렇듯 불완전한 삶을 영위한다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 개인의 범주를 넘어서 집단 혹은 인류가 지닌 어떤 보편적 상상력으로까지 확장될 경우 우리는 일컬어 그것을 낙원상실의 원형상징이라 부른다.
포항지역 원로 시인 서상은(77·사진)씨가 최근 펴낸 시집 `호미곶 아리랑`(고요아침)은 이같은 낙원상실의식이라는 원형상징이 그 중심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 작품들은 이 원형상징의 파생물로서 각자 유기적 체계를 형성해 전체 문학의 의미망을 엮어내고 있는 듯 하다.
서씨의 시집은 시간적인 차원과 공간적인 두 가지 관점에서 낙원상실의식이 내면화 돼 있다.
시인에게 있어 시간적 차원의 낙원상실의식은 그의 유년시절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의 의식 속에서 유년시절이란 한 생애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시기로 각인돼 있는데 그런 까닭에 현재 그가 성인이 돼 세속적 삶에 골몰케 된 것은 바꾸어 말해 완전한 삶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개인사적으로서의 그의 유년은 인류사적으로는 일종의 신화시대에 비유돼 마치 그 신화시대에 에덴이 있었듯 그의 유년에 한생의 가장 순수무구한 영원성이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초가집 저녁연기
타오르는 냄새
마구간 여물향기
산 그림자 묻어오는
당신의 발자국 소리
윙윙 개 짖는 소리
장작 패는 소리
산울림으로 번져가고
초승달 비친
어머니 얼굴
다듬이 소리로
익어가는 저녁”
`산촌이 익어간다` 전문
그의 유년은 비록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을지는 모르나 성인의 삶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갈등과 탐욕과 이기적 생존경쟁을 초월한 어떤 사랑과 축복이 가득 넘치는 시기였다.
`초가집 저녁 연기/타오르는 냄새/마구간 여물향기`라는 묘사를 통해 그의 유년이 또한 아름답고 순결하고 무구한 삶의 어떤 원형의 하나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에게 있어서 유년은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행복한 시기인 것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년이 되어 이 유년의 행복을 상실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 시집의 수록 시들이 대부분 이렇게 그가 잃어버린 유년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서씨에게 있어서 공간적 차원의 낙원상실의식은 당연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표출된다.
시간의 축에서 그의 삶의 낙원이 유년이었다면 공간의 축에서 그것은 고향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향이란 그 누구에게나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다. 그것은 그 곳이 어머니가 항상 주거하고 있으며 공간, 자신의 생명이 잉태되고 자신의 목숨이 무보수의 사랑 속에 길러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