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은 아주 길었다. 마음이 한가로워서였을 것이다. 8월, 9월은 몹시 힘들게 보냈는데, 급한 일들을 어떻게든 마감을 짓자 갑자기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추석 전전날에 대전에 내려갔다. 전날에는 고등학생 때 추억이 깃든 옛 도시 중심가를 걸었다. 그곳도 역시 변하기는 했다. 옛날에는 브라암스가 있었고, 얼마전까지 쌍투스라는 커피숍이 있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왁자지껄 드나드는 로바다야키가 들어섰다. 대신에 쌍리라는 조용한, `요즘스럽지` 않은 찻집이 생겼다. 오래 못 만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차례를 지내고 서울로 올라와 장인이 계신 파주에 다녀오자 어쩐지 모든 의례를 다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음날은 일찍 학교에 나갔다.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불교방송 라디오에 잠깐 들러 생방송 10분을 한 뒤다. 아무도 없는 인문대학 캠퍼스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 없다.
연구실에 들어가자마자 방 청소를 하고 책들을 새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매번 수업에, 회의에, 논문에, 평론에, 출판에, 약속에 쫓겨 다니다 보니 마음은 늘 분주하고, 연구실에 들어앉아 있어도 마음은 바깥에 있을 때가 많다. 아홉 시 반쯤부터 시작한 정리는 네 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이제 다 된 것 같다. 있을 게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 같다. 당장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이제 `문학사상`소설 부문 신인상 응모 원고들을 보아나갈 차례다. 놓일 곳에 놓여 있는 원고들을 우편봉투에서 꺼내 하나하나 읽어간다.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구성이며, 문장 솜씨 같은 것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한참을 끈기 있게 찾아 읽어가자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두세 편 있다. 그만하면 나머지 응모 원고들 중에도 고를 만한 작품이 있을 테니 오늘 성과는 이것으로 되었다.
그러자 찾아뵈어야 할 선생님들을 찾아뵙지 못한 늦은 생각이 난다. 한 분 선생님께는 미리 전화도 드렸지만 다른 분께는 추석 전에 인사조차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그런데 오늘은 운이 좋다. 이 분과, 이 분이 아끼는 `늙은` 박사 한 분과, 언제 저녁 식사라도 하시자고 전화를 드렸는데, 마침 두 분이 같이 있다고 당장 올 수 있으면 오라시는 것이다. 학교에서 양재동까지 택시로 삼십 분. 가니 선생님과 선생님의 `학생들` 셋이 함께 앉아 있다. 선생님께서 요즘 어떠냐고 물으신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글을 가려 쓰겠습니다. 글 많이 쓴다고 좋은 글 쓰는 것은 아니고, 몸도 좋지 않으니, 이제는 공부 절반, 운동 절반 하겠습니다. 눈이 좋지 않아졌으니 밤 아홉 시가 넘으면 책을 읽지 않고 대신에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겠습니다. 마음 급하게 먹지 않고 차근차근 하루에 200자 원고지 스무 장만 써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술도 가려 먹고 사람도 가려 만나겠습니다. 이 말씀은 밖으로 내지 못했다.)
어제는 다시 학교에 나갔다. 심사 원고들을 다 읽고 그 가운데 서너 편을 추려냈다. 도서관에 반납하려고 그렇게 찾아도 없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집 `고독한 자유`를 찾았다. 이 가운데 `지금은 죽은 왕녀를 위하여`와 `거울`을 읽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북한산에 올랐다. 이북5도청 쪽으로 올라가 대남문, 대성문 지나 형제봉 거쳐 평창동 쪽으로 내려왔다. 산에 오르니 바야흐로 가을 기운이 세상에 가득하다. 문득 어제 휴대폰 메모에 써 둔 시 구절을 생각한다. “돌아가는 길은 / 오던 길 꼭 그대로인데 / 왜 이렇게 가슴이 막막한지요”.
나는 벌써 하산을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마음이 한가롭다. 이번 추석은 유난히 길다. 아무래도 내 인생이 한 번 또 변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