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국, 중국,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전쟁이 심각하다. 한국의 독도, 중국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러시아의 북방 4개 섬을 두고 동아시아 관련 4개국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여론이 엇갈렸다. 그때는 한창 대통령 인기가 떨어지고 있을 때였고, 한일 정보보호협정 문제로 논란이 많았기 때문에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인기 제고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 여당은 그때 세금 문제로 급박한 위기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내막은 잘 알 수 없지만 일본 여당 역시 `내우(內憂)`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일본 수상은 독도 방문에 즉각 반응하며, 국내 여론의 관심을`외환(外患)`쪽으로 돌리려 했다.
일본의 반응이 심각하자 독도 방문은 뜨거운 감자를 건드린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몇 주가 지나면서 상황은 아주 달라졌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이어 곧바로 중국의 민간인들이 시위대를 조직해서 댜오위다오에 접근, 상륙했다. 중국 정부는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것처럼 일본에 이 섬들을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중국 안에서는 성난 시위대들이 일본 상품을 배격하고 일본 자본을 위협하는 상황이 몇날 며칠 계속됐다.
이제 일본은 자신들이 단지 한국을 상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중국 정부의 댜오위다오 자국 영토화 정책과 내막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급속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끝일까? 아직 러시아 문제가 남아 있다. 북방4개섬은 일본이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해 온 섬들이지만 이 섬들 역시 세계제2차대전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그 정당성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일본은 영토 문제 측면에서는 한·중·러 세 나라의 신`삼국간섭`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을 향해서는 섬을 내놓으라고 하고, 중국을 향해서는 섬들이 자기 땅이라고 하는 모순을 감출 수 없게 됐고, 이 과정에서 일본이 역사 문제를 얼마나 소홀하게, 부정직하게 다루어 왔는지 드러났다. 위안부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식민지배, 침략전쟁 등에 대해서 일본은 유럽의 독일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기조차 꺼릴 뿐 아니라 자신이 마치 전쟁의 피해자나 되는 것 같은 억울한 표정을 짓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영토 분쟁 국면은 제2차대전 결과로 형성된 `전후체제`가 새로운 정비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전후라고 하면 6·25 전쟁 이후를 가리키는 말로 정착이 됐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일본에서 전후는 태평양전쟁 이후의 긴 역사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전후체제 아래서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맺어 평화시대를 구가했고,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이 시대가 지금 끝나가고 있다. 중국은 근대 이후 어느 때보다도 강해졌고, 일본을 한 번은 `손봐줘야` 한다는 역사적 보상심리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여전히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외교는 치밀하다. 계산도 정확하다. 그러나 이 수치 계산 능력 때문에 지금 일본은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의 외교 능력은 형편없어 보이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잘 상대하고 있다. 일본이 키워 온 여러 논리들은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한 바다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언제라도 쓰나미에 쓸려갈 수 있다. 국가들끼리 분쟁을 치르면 양쪽의 국민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 나는 세계시민의 관점에서 일본이 과거를 바로 보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