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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선승이 없다

등록일 2012-09-13 21:04 게재일 2012-09-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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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지난 토요일, 일요일에는 진해에서 김달진 문학제가 열렸다. 일요일 아침에 김달진 생가에서 시낭송을 하기로 되어 있어, 토요일 오후에 진해에 가 행사에 참여하고 일요일 늦게 올라왔다.

월요일 아침에는 불교방송 아침 프로에 무슨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돼 있어 여섯시 반부터 서울 마포에 있는 방송국에 나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 중에 토요일 오전 김포에서 김해 가는 비행기 안에서 김윤식 선생을 뵈었다는 사람이 있었다. 정치평론가였다.

김윤식 선생은 1936년생, 지금 일흔일곱, 여덟을 헤아리는 분이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과에서 오랫동안 학문 활동을 펼치다 퇴직하신지 벌써 오래되셨다. 경상남도 진영이 고향이신데, 김달진 문학제와는 무슨 인연이 있는지 매년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계신다.

그 날도 이 분은 김해를 통해 진해로 가셨던 모양이다. 이 정치평론가가 김윤식 선생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무슨 일본어 책을 보고 계셨는데, 체구가 있는 사람은 비행기 좌석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말을 걸어주셨다고 했다.

어른이 어른인지라 무척 조심스럽지만 이 정치평론가는 그래도 이 분께 시나가와에는 언제 가셨더냐고 여쭈어 보았단다. 일제시대 비평가 임화가 시인이기도 해서 일본 비평가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비내리는 시나가와 역`에 화답 해`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라는 시를 지은 것이 두고두고 연구 주제의 하나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 느닷없는 질문에 이 분은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정치평론가를 쳐다보셨노라고 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학교에서도 퇴직하시고 방송 같은 데는 좀처럼 출연도 하지 않는데, 그래도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 당신은 김달진 문학제에 잠깐 참석해서 당신의 소임을 마치고는 식장을 빠져나가셨다고 한다. 내가 진해 구민회관에 갔을 때 그 분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정치평론가와 두 시간 되는 생방송 토론을 마치고 학교로 가는데, 김윤식 선생과 관련해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그 많은 생각 가운데 가장 정확한 표현을 어제서야 찾았다. `지금 절간에 선승이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을 절간이라 비유해 본다면 과연 이 절간에 선승이 없는 것 같은 적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든 세월을 학문 연구에 다 바쳐 새로운 세계를 열어나가려는 고독한 투쟁 대신에 행사에 참여하고 토론에 참여하는 필자가 과연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춘 연구자일까?

필자는 선생이 학교에 재직하고 계실 때 그 단단하던 어깨를 잊지 못한다. 선생은 양복을 세련되게 입을 줄 아는 분이셨다. 필자의 뇌리에는 푸른색 와이셔츠에 멋진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으로 학교 캠퍼스 자하연 옆을 걸어가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 분이 50대 중반쯤이나 후반쯤이셨을 것이다. 그때만 해도 선생은 몸과 마음에 지침이 없었고, 매일 학문세계를 열어나가는 뜨거움이 계셨다.

내가 진해 구민회관에 가자 선생을 뵈었다는 사람들이 참 기운이 빠져 보이신다는 말들을 했다. 눈에 띄게 쇠약해지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사실 쇠약해지신 것이 아니다. 지금도 선생은 몇 달 전에 새로운 저서를 냈고, `문학사상`에는 월평을 연재하고 계신다. 선승이 절간을 떠나 다른 곳에 가 있을 뿐, 선생을 닮은 선승이 그 절간에 없을 뿐이다. 선승 없는 절간에 이판인지 사판인지 불분명한 사람 하나가 선승의 자태를 그리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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