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훔쳐가는 노래` 창비 펴냄 진은영 지음, 116쪽<br>현실세계 사회적 상상력과<br>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br>새로운 감각의 세계 선봬
지난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이후 두권의 시집을 통해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최근 국내 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으로 떠오른 진은영 시인<사진>의 세번째 시집`훔쳐가는 노래`(창비)가 출간됐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선보인다.
201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그 머나먼`외 5편(`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오래된 이야기`)을 비롯해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깃든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언어와 감각적이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간명한 표현들로 정제된 총 50편의 시편이 저마다 강렬한 인상을 새긴다.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나머지는 물//세상의 절반은 사랑/나머지는 슬픔//붉은 물이 스민다/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세상의 절반은 삶/나머지는 노래//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세상의 절반은 노래/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세상의 절반`전문)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창작과정의 문제로 고민해온 진은영 시인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치적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신형철)으로 꼽힌다.
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정치의 간극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삶의 한 지점에 발을 딛고 선 시인은 타성의 울타리 안에 갇힌 관습적이고 지루한 일상에 고착된 시선을 거두고 진실에 가까운 삶의 실체를 보고자 한다.
가까이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더 멀리 있는 낯선 삶을 들여다보는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보는 시인은 “어떤 이야기가,/어떤 인생이,/어떤 시작이/아름답게 시작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아름답게 시작되는 시`)를 생각하며, “가장 낡은 변두리에서 흘러나오는 더운 하수 같은 노래”가 흐르고 “미로처럼 생긴 거리들에서 일제히 떠오르는 빨간 풍선 같은 소망”(`Bucket List`)이 이루어지는 `혁명`과 `철학`의 세계로 시야를 넓혀간다.
사회참여와 감각 사이의 갈등 속에서 새로운 시적 화법에 “시의 정치성에 대한 자신만의 오랜 고민”(함돈균)을 담아온 시인은 동화적인 상상력과 알레고리를 접합하여 국가폭력이 합법적으로 자행되고 `살인자`가 오히려 당당하게도 버젓이 “살인의 장소”를 점령하는 오늘의 현실을 환기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