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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한국 술

등록일 2012-08-30 21:11 게재일 2012-08-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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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요즘 들어 우리 술이 맛없다는 느낌이 부쩍 커졌다. 빛깔로 표현하면 술에서 노란 맛이 나는 것 같다고나 할까? 개나리 샛노랑 빛이 아니라 짐짐하고 멩멩한 빛, 알코올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시기는 마시지만 뭐 그리 탐탁할 것 없어 억지로 마시는 것 같은 술맛이다.

`참이슬`도, `처음처럼`도 다 마찬가지다. 언젠가 나는 `처음처럼파`가 되었는데, 두세 주 전부턴가는 이 `처음처럼`이 처음과 같지 않은 것 같아 적잖이 당황했다. 술에서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개운치 못한 단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목으로 넘기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옛날에 `참이슬`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처음처럼`이 그런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이 이번에는 다시`참이슬`로 주종을 바꿔보았지만 맛이 깨끗하게 느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래서 요즘에는 꼭 빨간 딱지가 있는 `참이슬`을 달라고 한다. 그게 알코올 도수가 조금 더 높지만 그나마 맛이 낫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폭탄주를 마시기도 한다. 폭탄주가 남자들 주탁(酒卓)의 필수 복용 주류가 된 지는 벌써 오래지만 설마 이 폭탄주에서까지 노란 맛이 날 줄이야. 소주에 맥주를 타 마시는 소주 폭탄주는 노란 맛이 두 배나 되는 것처럼 느끼해서 입을 대기가 싫다. 왜 그럴까? 나는 한국 맥주 맛이 별로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라거, 카스, 하이트…. 이런 것들이 어째 진짜 맥주 같지가 않고 밍밍하거나 젬젬하다. 그러니 여기에 소주를 타본들 독한 맛은 조금 늘지만 단 맛이 같이 늘어나니 어떻게 감당해 볼 수가 없다.

유럽에 가서 맥주 맛을 봐서가 아니라, 요즘 유럽에서 수입해 들어오는 맥주들은 맛이 그 나름대로 독특하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맛본, 약맛 나는 `기네스`는 맥주의 진한 맛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주지 않던가. 나는 요즘 독일 맥주인 `에딩거 헤페`를 좋아하는데, 맛이 깊고도 강렬하지만 값이 이만저만 비싼 게 아니다. 한때는 밀러나 버드와이저를 좋아한 때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왠지 이것들이 싸구려 맥주의 대명사가 된 것 같다. 아마도 우리 맥주나 소주 단 맛이 이 맥주들과 어딘가 통한다는 생각이다.

일본에 더러 여행가면 고장마다 술이 제각각이어서 감탄스러울 때가 많다. 쌀로 빚었든 고구마로 빚었든 제각각 맛이 다르니 골라 맛보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진짜 술을 마신다는 느낌이 좋다. 화학주가 아니라 발효주인 까닭에, 일본 사람들은 요즘 우리 막걸리를 좋아한다지만 나는 진짜 곡물로 빚은 일본 술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다 못해`다테야마`같은 대중주도 그런대로 맛이 없지 않고, 언젠가 마셔본 오키나와 술 아와모리 같은 것은 알코올 도수가 몇십 도씩 되는데도 마시는 맛은 일품이다.

중국은 또 어떤가? 언젠가부터 `수정방`에 맛을 들여, 어쩌다 가끔 겨우 마실 수 있는 비싼 술이지만, 입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그 맛은 생각만 해도 짜릿해서 잊을 수 없다. `마오타이`같은 술은 같은 중국술인데도 왜 그렇게 달착지근한지? 술 하면 역시 `수정방`처럼 투명하게 빛나면서 폭죽처럼 확산되는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럼 우리 소주는 좋은 게 없나? 물론 있다. 다들 알고 있듯이 안동소주도 좋고, 이강주도 좋고, 한산 소곡주도 좋다. 안동소주는 독해도 독하지 않고, 이강주는 냄새가 나도 냄새가 나지 않으며, 소곡주는 달아도 단 맛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소주 중엔 제주도나 가야 맛볼 수 있는 `한라산`이 최고다. 그 투명하게 비치는 병에 한라산 눈처럼 하얗게 빛나는 소주를 한 모금 목에 넘기면 제주 애월리 바닷물을 소금기 빼서 마시는 것 같은 근사한 기분이 난다. 옛날에 투박한 쓴 맛을 주는 경월이 그런대로 괜찮았고, 지금은 마산에 가면 마실 수 있는 참소주도 괜찮다. 그래도 한국 소주는 어딘가 진짜 맛을 잃어버린 것 같다. 사람들이 달게 되고 노래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술을 술답게 만들지 않기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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