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축구도시` 포항에 야구열풍이 한바탕 몰아쳤다. 축구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야구열기는 대단했다. 지난 14일 포항야구장에서 처음 열린 삼성과 한화의 프로야구 개막경기에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일부 야구팬들이 암표까지 사서 입장했다고 하니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포항의 야구열기를 짐작케 했다. 필자도 이날 어렵게 입장권(3층 자유석)을 구해 비를 맞으며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봤다.
1만석이 넘는 관중석이 꽉 차는 광경을 직접 목격하면서 그동안 포항시민들이 얼마나 프로야구 경기에 목말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시력이 나쁘다보니 3층 관중석에서는 선수 얼굴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었고 투수가 던진 공이 너무 빨라 눈을 고정시키지 않으면 언제 어디로 날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시원스럽게 날아가는 야구공을 보자 무더위와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갔다.
포항도 한때는 축구열풍에 푹 빠졌을 때가 있었다. 지난 1973년 국내 처음으로 포항제철 실업축구단이 창단된 이후 1984년 포항아톰즈축구단에서 포항스틸러스로 구단 이름이 변경된 시점(1997년)으로 추측된다.
필자가 체육부 기자로 활동하던 그 당시에는 현 포항 감독인 황선홍과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홍명보 감독, 전북의 포항토박이 이동국, 영덕출신 박태하, 왼발의 달인 하석주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멤버들이 포항선수로 뛰던 시절이었다. 그 열기가 2007년 K-리그 우승으로 이어지면서 포항은 축구도시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그 당시 스틸야드에는 축구팬들로 넘쳐났고 2만5천이 넘는 관중석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들어찼다. 그 땐 동네 공터마다 공을 차는 꼬마들로 북적였고, 주말의 초중학교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아저씨들로 붐볐다. 포항스틸러스 경기라도 열리는 날에는 하루 종일 축구얘기로 꽃피우기도 했다.
5~6년이 지난 지금도 포항시민들의 축구사랑은 변함이 없다. 지난 19일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대구와의 홈 경기에는 슈퍼매치가 아닌데도 1만1천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다. 이 같은 관중 수는 지난 14일 포항야구장을 찾은 입장객 보다 단순 비교로는 더 많다. 이는 축구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다는 증거다. 포항스틸러스의 K리그 관중동원력은 평균 1만337명으로 국내 16개 프로구단 가운데 수원, 서울, 전북에 이어 4위다. 이는 홈 경기가 열릴 때마다 1만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한 셈이다. 중소도시에서 1만명이 넘는 고정팬을 확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포항은 팀 창단 39년의 역사를 갖고 있고 K리그, 아시안클럽대항, FA컵 등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 쥔 국내 최고의 명문클럽이다. 명문클럽 반열에 오르기까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축구장을 찾아 “스틸러~스”를 외쳐주는 열렬한 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지난 18일 상암구장에서 벌어진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전과 같은 뜨거운 축구열기다. 이날 상암구장에는 올 들어 최대 인파인 5만787명의 구름관중이 몰렸다고 한다. 물론 런던올림픽에서 딴 동메달의 여운이 K리그에 반영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열기는 정말 대단했다. 포항에도 그런 바람이 다시 불었으면 좋겠다.
포항은 이제 축구와 야구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도시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최고 시설의 축구전용구장과 전용야구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시민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를 골라 관람할 수 있게 돼 선택의 폭도 그 만큼 넓어졌다. 선택의 권리는 오로지 포항시민들의 몫이다. 축구와 야구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도시 포항, 이곳에 살고 있는 그 자체가 행복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