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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불황

등록일 2012-08-23 21:45 게재일 2012-08-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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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경제가 안 좋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출판 불황만큼 심각한 것도 별로 없을 것이다. 경제 여러 곳에 주름살이 생기면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필요한 책은 사주려고 애쓴다. 어쩌다 자기에게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는 하는데, 주로 자기계발서다.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까를 궁리하는 것이다. 인문이나 사회과학 계통의 교양서적, 문학에 관련된 책들은 찬밥 신세다.

두 주 전쯤이었나? 학원이라는 도매상이 폐업을 했다. 35년 전통을 가졌다는 국내 4위 규모 회사였다. 내가 아는 1인 출판사 사장이 이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듣고 울상을 지었다. 결제 받아야 할 잔고가 500만원 넘게 깔려 있었다고 했다. 아무 언질도 없이 그렇게 문을 닫아버릴 수 있느냐고 했다. 그런데 잘 나간다 하는 출판사들 몇 개는 어떻게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일찌감치 돈을 받아 챙겼더라는 것이었다. 학원도매 같은 회사가 무너지면 1인출판사나 사원 두셋 놓고 책 만드는 회사들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를 보면, 지난 1월에는 국내 최대 규모 총판인 수송사라는 회사가 무너졌고, 4월에는 인천공항에 입점한 체인형 서점 GS북이 부도를 냈다. 확실히 심각한 출판 불황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하나? 불황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들과 도태되는 자들을 골라내고 이것이 새로운 경제 환경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경쟁만능주의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배려하지 않는다. 인본적이지 않고, 야만적이다.

나라가 출판 불황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보태줄 수 있다. 나라가 출판산업을 육성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책을 만드는 작은 회사들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 특히 학술이나 문학 같은 분야의 책을 만드는 회사들을 위한 정책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 사정은 정반대다. 매년 우수 학술 도서를 선정해서 책을 구입해 주는 학술원에서 올해 선정된 도서 한 권당 800만원을 지원해준다고 한다. 작년에는 1천500만원 선이었으니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하는데, 예년에 책정했던 돈은 지금 어디에 쓰고 있나? 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만 차라리 말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나라에서 학술적인 책을 내는 출판사들은 500부를 바라보고 책을 만든다. 저자에게 인세를 주고, 종이값을 대고, 인쇄·제본·배본 등을 하고, 사무실을 유지하고, 한두 사람 월급을 주는데 들어가는 돈을 따져본다. 책 한 권 만드는데 약 1천만원 정도는 든다고 봐야 한다. 그럼 책값은 얼마나 하나? 한 권에 2만원이라고 하면 500부를 찍어 다 팔아야 본전이다. 이것도 한 번에 다 팔리는 게 아니라 1년을 두고, 2년을 두고 팔아야 바닥을 볼 수 있다.

대중적인 감각을 갖춘 저자의 책은 사정이 낫다. 그러나 웬만한 학술 서적의 국내 수요는 약 300부를 넘지 못한다. 그만큼 시장이 작고 영세하다. 인터넷이다, 모바일폰이다, e북이다 하고, 경제가 어느 때보다 안 좋다고 하고, 국민들의 경제주의적 사고는 훨씬 더 강화되어 버렸기 때문에 `작은이`들의 출판산업에는 비상구가 없다.

바야흐로 사양산업이 되어버린 출판업이다. 마치 우리 농촌을 닮았다. 언제 사정이 좋아지려는지 기약이 없다. 그런데 이 농촌에는 농협도 없다. 추곡가를 수매해 줘야 할 정부도 무성의하다.

책 만드는 산업이 귀한 것은 그것이 문화를 양성하고, 사람들의 의식을 향상시켜 주기 때문이다. 책은 마음에 양식이 되는 것이라 한다. 책을 읽는 사람들 스스로 이 뜻을 깊이 새겨봐야 한다.

지하철을 타면 양쪽 문 사이 한 칸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 일곱 명이다. 나는 종종 이 분들을 관찰해 본다. 일곱 명 중에 평균 네 명은 모바일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책을 가진 사람은 아예 없거나, 몇 번 세어볼 때 한 명 있을까 말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안 읽는 사람들이다. 책 읽는 한 명이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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