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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서 전복 비빔밥을

등록일 2012-08-02 21:16 게재일 2012-08-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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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이 뜨거운 여름에 하루쯤은 일을 잊고, 놓고, 포항 바닷가 쪽에 나가보는 건 어떻겠소?

포항 바닷가도 불꽃 축제 벌어지는 시끄러운 곳은 말고. 그런 곳에는 식구들하고나 가고. 그댈랑은 따로 혼자 되어 저 북부 해안도로 외로 돌아 포항을 빠져 나가는 길목 같은데 앉아.

혼자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겨 보오. 내가 어찌 어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말요.

그런 한적한 곳은 그러니까 아리랑 횟집 같은 곳이겠소. 포항 본고장 물회 맛이 일품인 곳. 회 무침에 얼음 김치 국물을 적당히 붓고, 국수에, 밥에, 참 시원도 스러웠소. 창밖으로는 물결이 일고 바다 건너편에는 포스코가 길게 누워 있고.

그러면 더 한적한 바다로 나가고 싶지 않겠소?

그러면 영덕 가는 쪽으로 권할 만하오.

불국사 말사라는, 보경사 돌아드는 곳 그냥 지나쳐 조금만 더 가면 다리가 하나 보이는데.

그 짧디 짧은 다리가 영덕과 포항을 경계 짓는다 하더이다.

그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다가 보이는 쪽으로 돌아드니, 공기 냄새도, 물 냄새도 벌써 포항하고는 많이도 다르고. 내 마음 저절로 한적해 지더이다.

바다는 해변횟집 바로 앞에 방파제까지 밀려와 일렁이고 있었소.

그 집은 벌써 몇 십 년째 한집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하더이다.

전복이 비빔밥 재료가 될 수도 있음을 그때서야 알았소.

전복이라는 두 글자 말로는 결코 실감 나게 표현 못 할 향미. 바다를 얇게 썰어, 물에 헹궈, 짭조름한 맛은 덜어내고, 송이버섯같이 향긋하고 유순한 맛만 우려 내 놓은 것 같은 맛.

벼를 모른다고 한 김해경 이상처럼 벼를 잊은 지 너무 오래 된 내게 바다는 또 무슨 호강이오? 서울에서 비린내 없는 전복 구경은 어찌나 어렵던지? 나는 으레 날전복은 비린내 나는 것이려니 했었소.

2층 방에 올라가자 오래된 화분들이 정갈하게 앉고 섰다 우릴 맞아 주고. 자리를 잡고 앉자, 파도가 내 친한 벗이라도 되는 듯 장난질을 쳤소.

문득 백석이 동해를 친구삼아 건네던 말을 떠올렸소.

`이것은 그대와 나밖에 모르는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공미리는 학꽁치의 다른 이름이오.

서북 사람인 백석이는 동해가 좋았던 모양이오. 충청도 평야에서 난 나도 왜 이렇게 동해, 이 친구가 좋아지는지 모르겠소.

동해야. 나도 나와 그대밖에 모르는 비밀을 하나쯤 갖고 싶으이.

숟가락 뜨다 말고 친구를 바라보고, `참`소주병을 기울여 팔꿈치 무릎에 얹어 놓고 한참을 뜸들이다 한 모금 넘기고, 넘기고.

이것은 내가 혼자 그곳에 간다면 그렇겠다는 것이오. 그때는 바로 해가 저물어도 좋소. 바다에 그늘이, 어둠이 내리는 것, 뜨거운 낮이 차차 열이 가시는 것이 얼마나 좋이 느껴지겠소? 그러면 해풍은 또 얼마나 시원켔소?

이렇게 폭염이 몇 날 며칠째 계속되는 나날이면, 바로 엊그제 갔다 오고도 벌써 저 멀리 웅크려 앉은 호랑이 꼬리뼈 언저리로 또 가보고 싶은 생각. 맛난 전복비빔밥에 바닷바람까지 비벼 넣고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어지는 마음.

이런 마음으로도 나는 벌써 서울에 있어도 서늘해 지오. 그날이 그날 같은 나날에 그런 맛있는 날은 또 없을 것 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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