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학생들이 줄지어 하교하고 있었어요. `우리 승민이도 집에 오고 있겠네`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가 집에 있으니 좋아하겠다`라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현관문앞까지 걸어갔죠”
지난해 12월 동급학생들의 학교폭력에 견디다 못해 14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져 전국을 들썩거리게 만든 대구 덕원중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씨가 최근 대구학교폭력예방센터에서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함께 한 자리에서 털어놓은 말이다. 이 사건후 전국은 벌집쑤신 것처럼 뒤집혔다. 과거에도 유사사건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유서에 학교폭력의 구체적인 방법이 나열됐기 때문에 메가톤급 이상의 폭풍이 교육계를 강타했다. 담당교육청인 대구교육청은 말할것도 없었고, 교과부장관, 새누리당, 급기야 이명박 대통령도 전국 교육감을 소집시켜 비상대책회의를 여는 등 전국이 들썩였다. 그리고 엄청난 대책이,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방법이 나올듯이 보였다.
권군이 이땅을 떠난지 6개월이 지났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이 사건후 대구에서만 9명이 권군의 뒤를 이었다. 경북에서도 5명이 연이어 생을 마감했다. 교육청을 비롯 관계당국에서 연일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학생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자살행진을 이어가는 아이러니가 연속으로 벌어진 것이다.
물론 학생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모조리 학교나 교육당국에 몰아붙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건이후 나온 대책이란 게 위클래스라는 전문상담실을 설치하거나 인성교육, 밥상머리교육강화 등 뜬구름 잡는 대책뿐이었다. 경북교육청은 한발 더 나아가 160억원을 들여 폭력학생들만 입학시키는 인성교육 전담 대안학교를 만들겠다고 했다.
다 좋다.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듯 제도권내에서 할 건 다 해봐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하는 학생이 줄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참교육학부모회를 비롯 교육관련단체는 교육담당자는 밤잠을 자지 않더라도 학교폭력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권 처방들이 얼마나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될지는 의심스럽다.
학교폭력을 막을 제1차 책임자는 뭐니뭐니해도 담임교사다. 담임이 부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학생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지금도 너무 피곤하다고 아우성이다. 주 20여시간의 수업에다 수많은 공문과 성적처리, 학생생활지도, 진학지도로 쉴틈이 없다고 한다. 이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예전과 비교해 담임교사의 업무는 많이 적어진 게 사실이다. 수년전에 이미 교사의 부담을 덜기 위해 야간당직이 없어졌고, 학생수도 과거보다 훨씬 줄었으며, 업무보조원들도 생겼다.
그런 점을 감안해볼 때 교사의 학생에 대한 애정이나 책임감에 문제가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교사의 봉급은 과거에 비해 크게 올랐고, IMF이후에는 교사가 되기위해 사범대학과 교육대에 성적상위권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국가로부터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 책임감이나 사명감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교사를 샐러리맨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확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권군의 어머니 임씨는 사건전후의 상황을 책으로 펴냈다.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라고 제목을 붙였다. 아들이 등교하지 않고 서성이다 베란다에서 몸을 내던진 하루가 얼마나 길었을지를 되새기기 위해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그녀는 한 아이의 억울한 죽음에도 변하지 않는 교육기관과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 당연한 처벌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분노 때문에 책을 내게 됐다고 했다.
오늘도 많은 학생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서성이고 있지는 않을까. 그저 답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