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참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자연계에서 고체, 액체, 기체의 세 형태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 물이다. 물은 두 개의 수소 원자가 하나의 산소 원자와 결합해 만들어진다. 이때 두 개의 수소 원자는 산소 원자의 한 쪽에 몰려서 달라붙으므로 물 분자의 한 쪽은 양전하를, 다른 한 쪽은 음전하를 띠게 된다. 양성 전기를 띠는 수소 원자들은 다른 물 분자의 산소 원자가 가지고 있는 음전하를 끌어당기는데 이것이 바로 물 분자들 사이에 응집력이 생기는 원리다. 이 때문에 어떤 표면에 떨어진 물은 얇은 막으로 퍼지는 대신 방울 모양으로 맺히는 것이다. 이처럼 물의 표면장력이 크기 때문에 모세관 현상이 생기는데, 이것이 물이 식물의 뿌리나 사람의 혈관을 타고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무엇보다도 물은 생물체의 필수 요소인 에너지원의 주된 원천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물이 우주의 근원이며 물을 통해 모든 것이 창조됐다고 주장했다. 물을 그저 원하기만 하면 얻어지는 물질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물은 우리 몸과 그 속의 세포 하나하나 조직과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양분과 산소를 몸의 구석구석으로 운반해주며 체내의 독성을 제거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체내에 물이 1퍼센트만 모자라도 갈증을 느끼고 5퍼센트가 모자라면 현기증이 나며 8퍼센트에 이르면 내분비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만일 몸속의 물 부족량이 10퍼센트에 달하면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지고 12퍼센트가 되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생명체에게 이토록 중요한 존재인 물은 세계 곳곳의 전설 또는 신화의 배경에 근원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태고의 거대한 물 덩어리로부터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중국에는 우주의 알이 음과 양, 즉 여성과 남성을 나타내는 두 힘으로 나뉘는 과정에서 물이 생겨났다는 신화가 전해져온다. 고대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이 이 세상의 한복판에 있으며 사면은 거대한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 양쯔 강이 흘러나가는 동쪽 바다 밑에는 수정궁에 사는 용왕이 있다고 믿었다.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의 영이 물위를 거닐며 운행하시다가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이 나뉘라 하리라”고 했으며 또 하느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했다고 쓰어 있다. 고대 유대 경전 중의 하나인 라바 전도서 7장28절에는 “조물주께서 첫 번째 사람을 만드실 제 하느님이 그를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들 앞으로 데려가 세우시고 말씀하시되 `나의 솜씨를 보라. 과연 아름답고 훌륭하지 않으냐! 내가 창조한 이 모든 것을 너를 위해 만들었나니 이를 상고하여 내가 만든 세상을 더럽히거나 황폐케 하지 말지니라. 만일 네가 이를 더럽히거나 황폐케 하면 이를 되살릴 자가 없음이라`하시니라”고 적혀 있다.
전설이나 신화가 아니더라도 물은 인류의 생존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사람들은 마시고 씻기 위해 또 집을 청소하고 옷을 세탁하는 일은 물론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을 끄고 여러 종교에서 정화의식이나 세정식을 행하는 데에도 물을 필요로 하며 병을 치료하고 농작물에 관개수를 대며 나아가 지혜를 얻고자 하는 구도의 과정에서도 물을 사용한다. 지구상의 물을 보호하고 또 보존하는 것을 의무나 과제로 생각하여 수동적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물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또 이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능동적인 태도로 대처해야 한다. 물을 대함에 있어 하루 중 아침에 샤워를 할 때, 한 잔의 물을 마실 때, 수세식 변기의 물을 내릴 때, 세탁기를 돌릴 때마다 물의 고마움을 새롭게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가뭄은 물이 우리에게 주는 준엄한 경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