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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됨이 공부보다 먼저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등록일 2012-06-14 21:40 게재일 2012-06-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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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 일이다. 전공진입 심사라는 것이 있어서 학생 몇 명 을 면접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에서는 대개 학교에 들어올 때는 세부 전공이나 학과를 선택하지 않고 계열별 정도로 입학을 하고, 2학년쯤이 될 때 자기 전공을 택하게 된다. 그러니까 전공진입 심사라는 것은 국문학과를 택하겠다고 지원한 학생들을 심사하는 행정적 절차인 것이다.

1차 심사가 끝난 뒤 2차 심사기 때문에 남은 여석이 둘밖에 없는데 학생은 넷이 지원을 해서 두 사람은 다시 3차 심사를 기다려야 하는 까다로움이 있었다. 학과 사무실에서 심사를 하는데 한 학생이 들어와서 앉는데, 그 태도나 행동거지가 이상하게도 거칠었다. 눈빛도 뭔가에 증오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지원서를 보니 써넣은 내용도 자기 과시로 받아들여지기 쉽게, 성의 없이, 그러면서도 거만하게 느껴졌다. 면접을 하는 자리에 가 앉았는데, 앉아 있는 태도도 단정하지 않고 물어보는 말을 끊다시피 하면서 대답을 하는데,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질문과 응답이 오가고 사무실을 빠져 나가는데, 필자는 서류를 쳐다보느라 미처 보지 못했지만, 옆에 벗어두었던 모자를 낚아채듯이 확 집어 들고는 나가버렸다는 것이었다.

학생이 나가고 나자 같이 합석해 있던 선생님이 저 학생을 마침 화장실에서 만났었다고 했다. 자신이 손을 씻고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드럽게 말했는데, 아무 응답도 없이 차갑게 서 있었다고 했다. 그때도 왜 이렇게 느낌이 안 좋지, 하고 생각만 하고 지나쳤는데, 바로 이 사무실에서 마주치게 됐다는 것이었다.

지금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로 오게 되면서 생각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학부 학생들과 잘 지내야겠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 지도교수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학교 다녔던 기억이 절절해서 나만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도학생들도 만나고 학과의 학부 학생들도 만나고 인문대 학생들도 자주 만나자. 그래서 그 친구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내 정성을 바쳐보자.

처음에 와서 세 학기는 문학의 현장들을 찾아다니고 글도 써서 발표회를 가져봤다.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차차 연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기 시작하면서 학생들과의 만남은 빈도수도 줄어들고 질적인 면에서도 부실해졌던 것 같다.

연구년이라고 해서 겨우 책 한 권을 펴내고 나서 학교로 돌아오자 다시 정신이 나는 것 같았다. 학부 학생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 것이다.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서 최근에는 `신입생 세미나'라는 자율 수업 말고도 `고전 원전 읽기'라는 것이 생겼기에, 이번 학기에 개설을 해서 스무 명 가까운 학생들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저녁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만나왔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다들 젊고 순수하다. 이 맑은 기운을 날마다 접함으로써 나 자신도 덜 낡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면접 때 만난 학생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일까? 집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학교에서 무슨 기분 나쁜 일을 당했던 것일까? 중요한 것은 사람됨이 공부보다 먼저라는 것이다. 공부만 앞세우는 풍토 속에서는 좋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많이 배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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