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가 세계 4대 미항으로 만들겠다는 동빈내항은 포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이번 주말 성대하게 치러지는 개항 50주년기념식도 이곳 동빈내항을 의미한다. 동빈내항은 어민들의 삶과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기쁨과 슬픔이 혼재한다. 국내를 넘어 세계적 유명세를 타는 죽도어시장이 있다. 한때 지역민에게 인기를 끌었던 얼음공장도 아직까지 볼수 있다. 선박엔진을 수리하는 소규모 공장도 즐비하다. 배를 수리하는 조선소는 건너편 송도쪽에 자리한다. 어민들은 막걸리 한사발로 피로를 푼다. 술기운에 목청을 높여보지만 그것도 잠시다. 만선의 기쁨에 아낙네들이 그들을 마중하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옆집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살아가는 곳, 그곳이 동빈내항이다.
오늘도 동빈내항은 어선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바다는 거칠지만 동빈내항은 조용하다. 말이 없다. 태풍이 와도 동빈내항은 수줍은 숙녀처럼 속내를 잘 보여주지 않는다. 송도가 파도를 막아주면서 동빈내항은 호수화돼 가고 있다. 바다지만 바다 같지 않은 곳, 그곳이 동빈내항이다.
포항사람의 삶과 함께 하고 있는 동빈내항의 물속은 어떨까. 최근 해양환경관리공단이 구항정화에 나서자 주민들은 깊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6일 해양폐기물 전용수거선의 퇴적오염물 제거작업을 지켜본 시민들은 시커먼 오염물질을 연신토해내는 동빈내항을 보며 걱정했다. 오염정도가 심각한 것은 아닌지 우려섞인 표정으로 지켜본 것이다.
동빈내항은 10여년전 준설한적이 있다. 국비 등 수백억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워낙 사업범위가 넓어 그때 당시에도 제대로 정화가 이뤄졌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동빈내항에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근본적인 차단 없이 내항의 완전 정화는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래도 준설작업을 끝낸 어느날엔가는 고기들이 죽도어시장 위판장 앞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동빈내항 환경정화가 끝난지 10여년이 흐른 후 최근 드러낸 동빈내항의 속 모습은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1억5천만원을 들여 구항 바다 속 쓰레기 수거와 퇴적 오염물을 제거하는 이사업은 20.5㏊ 면적을 정화하기 위해 약 두 달간 진행된다. 공단은 155t의 폐기물을 수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첫날 작업을 지켜본 시민들은 그 정도의 사업비로 턱없음을 실감했다.
동빈내항은 조수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 퇴적오염물질이 바다로 흘러나가지 못하는 구조여서 정기적인 정화작업이 필요하다. 공단은 그나마 이번 작업으로 구항의 수질오염을 다소 개선할 수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동빈내항을 포항시는 세계 4대 미항으로 조성하겠다며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강한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의지를 불태운다. 형산강의 물길을 트고 주변을 그야말로 아름답게 조성하겠다는 것이 대괄적인 요지다. 형산강 물길을 트면 그나마 내항 오염은 줄일 수 있다. 지금 동빈내항 어시장쪽에서 영일만 입구까지는 사실상 정체상태라고 보면된다. 호수처럼 갇혀 있는 셈이다. 물길을 트면 67일정도 걸린다. 1년내내 갇혀 있던 내항이 2개월에 한번정도 물이 순환된다는 의미다.
아무튼 이것도 미래의 얘기일 뿐이다. 현실은 답답하다. 이번 정화작업에서 드러난 것처럼 동빈내항의 속은 이미 중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런데도 동빈내항은 조용하다.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무런 일 없다는 듯 오늘도 어선들의 입출항 길을 안내하고 있다. 어민들의 삶의 장으로 역할을 말없이 수행하고 있다. 속은 썩어가면서도 말이다.
세계의 미항이 되기 위해서는 준설도 병행돼야 한다. 포항시와 항만청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겉만 화려하다고 해서 세계적 미항이 될 수 없다. 미리 준설을 포함한 정화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때가서 준비하면 늦다. 세계 4대 미항은 해저도 아름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