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 문학동네 펴냄, 쓰시 신이치 지음, 256쪽
2011년 3월1일.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는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는 단순히 `탈원전'이나 대체에너지 사용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3·11 이후 많은 사람들이 `경제 성장'을 삶의 목표로 삼아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만들어내는 시대,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를 미덕으로 여기는 시대 자체를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자손들이 그들의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해 먹고 마실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안전한 음식임을, 그리고 이 지구가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임을 깨닫는 이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지금과 같이 쫓기듯 사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슬로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삶을 누리며 느리게 살아가자는 운동 `슬로라이프'의 제창자 쓰지 신이치는 `슬로라이프를 위한 슬로플랜'(문학동네)에서 `돈과 경제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사람들의 `할 일' 리스트가 우리가 현재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족 문제를 비롯해 소외감으로 인한 자살률 증가, 교통사고, 전쟁, 빈부격차,
기업과 미디어의 횡포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모두 `시간의 문제'와 맞닿아 있으며 인간의 욕망에만 근거한 모든 `할 일'에는 결국 미래가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그는 우리가 시간과 화해하지 않고서는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며 `할 일 리스트'로 가득 찬 바쁜 삶을 `하지 않을 일 리스트'로 치환하는 방법을, `해야 할 일'이라는 집단적 강박에 시달리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하나씩 제시한다.
쓰지 신이치<사진>가 제시하는 `하지 않을 일 리스트'는 쓸데없는 일을 잘라내 일의 효율성을 높여 보다 많이, 보다 빨리 수행한다는 소위 `시간 관리술'이 아니다. 쓰지 신이치의 `하지 않을 일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할 일'만을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서 `하지 않을 일'을 채워감으로써 효율과 경쟁에 치이는 삶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느끼게 되어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다. “절대로 ~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기, 나무젓가락 쓰지 않기, 버스나 전철에 급히 올라타지 않기,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기,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기, 자동판매기 이용하지 않기, 식사시간에 일을 들고 오지 않기, 화장실에서의 시간을 소중히 하기…. 쓰지 신이치는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신경 쓴다면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하지 않을 일'을 제시한다. 그는 이런 작은 시작이야말로 할 일이 너무 많은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게 해준다고 말한다.
“안녕하세요”가 점점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만….”으로 변해가는 현대 사회. 밥 먹듯이 야근을 하고, 몸이 별로 좋지 않은데도 출근을 하며, 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그저 아등바등하며 어지간해서는 줄지 않는 `할 일' 리스트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신문에서도, 각종 미디어에서도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이나 수면시간을 줄여 일의 효율을 높이는 사람을 치켜세우고, 광고를 통해 자양강장제 등을 앞다투어 판매한다. 이렇게 `할 일 리스트'에 등 떠밀리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쓰지 신이치는 `잘못된 부분'을 줄임으로써 삶의 행복을 채우는 `뺄셈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잘못된 부분을 줄여나가야 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에는 `좋은 것'을 늘리는 덧셈의 접근방법과 `잘못된 부분'을 줄이는 뺄셈의 접근방법이 있다.
환경 문제를 예로 들자면, 이런 사업을 벌이고 저런 일을 해서 해결하자는 의견은 수도 없이 많지만, 무언가를 그만두자는 식의 주장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 오히려 이를 `소극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제로는, `할 일'의 과잉이 만들어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이런저런 `할 일'을 만들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