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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사랑은 무엇이었나?

등록일 2012-05-31 21:34 게재일 2012-05-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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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며칠 전에 대학동창생을 만났다. 여성이다. 어떤 심사 하는 곳에 갔는데, 마침 이 사람이 와 있었다. 여성이니, 이 사람이니 말했지만, 사실 잘 아는 사이고, 옛날 대학 다닐 때 1학년 때부터 알았고, 이런 저런 인간적 관계들로 뒤얽혀 있어 차라리 애증마저 없지 않다고 해야 할 사이였다.

살던 사람과 헤어졌다는 것이, 내가 그녀에게 들은 뒤늦은 사연이었다. 그러자 나는 단박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심정이 되어 우리 세대, 80년대의 사랑의 방식들을 새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대학 다닐 무렵에 어떤 신문에 기사 하나가 조그맣게 난 게 있었다. 한 남학생이 한 여학생을 찾아가 그 앞에서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미팅으로 만난 사이였고 다 만났다고 해야 손가락 몇 개를 헤아릴 정도였다. 그러나 남학생은 처음 본 여학생을 사랑했고, 여학생이 그를 만나주지 않자, 간청하고 매달리던 끝에 집에 찾아가 일을 벌이고 만 것이었다.

지금도 사랑 때문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많고 애증 끝에 상대방을 해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때처럼 단 한 번 만난 사람을 오매불망 쫓아다니다 제 감정의 열도를 못 이겨 죽어버리는 일은 찾기 힘들 것 같다. 그러니까 그때 사랑은 사랑이라기보다는 환각이었다.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환각을 사랑해서 쫓아다니는 것이 그 시대의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환각이었기 때문에, 서로들 자신의 환각을 쫓아 엇갈리는 사랑을 하다 쓰디쓴 실패를 맛보았다. A는 동창생 B를 좋아했는데, B는 다른 동창생 C를 사랑했다. C는 B를 사랑하지 않고 후배인 D를 사랑했고, D는 자기 동창생 E를 사랑했다. A는 남자였는데, 이 A를 사랑한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의 이름은 X였고, 이 X에게도 그녀를 사랑한 후배 남자 Y가 있었다. 그 Y를 더 후배인 Z가 사랑했다는 것도 그때 친구들 사이에 잘 알려진 얘기였다.

그러나 이렇게 엇갈린 사랑에 목을 매고 가슴 아파 하면서도 정작 사랑을 다른 무엇의 대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때 젊은 사람들은 사랑을 다른 귀한 것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사랑은 무엇의 대가가 될 수 있나? 이광수의 단편소설 `윤광호`를 보면 남자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이 등장한다. 첫째는 용모요, 둘째는 금력이요, 셋째는 학식이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내던 1980년대에도 그런 조건들이 작용하고 있었을까? 분명 어디선가는 그러했을 것이다. 금력, 권력이 작용하지 않는 시대는 없고 욕망이 없는 시대도 없다. 하지만 그때 젊은이들은 많은 경우 그런 것들 때문에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바꿔 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같은 이상을 가진 일을 하다가, 서로 좁은 울타리에서 오랜 시간을 부대끼다가, 정이 들어서, 상대방이 안쓰러워서,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하루아침에 그 세 가지 조건을 따라 관계를 바꾸고 끊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던 철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그 사람들의 사랑의 방식과 태도는 꽤나 비물질적이었다고 해야겠다. 그런 사랑의 환각이 너무 오랫동안 힘을 발휘한 까닭에 우리 세대의 사람들 가운데에는 겨우 이제야 세상을 다스리는 힘들을 깨닫고 서둘러 철이 들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뒤늦게 속물의 대열에 합류하려는 것이겠다.

1980년대에는 모든 것이 과격했다. 그러나 사랑이 과격해서 다른 가치를 돌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저 1980년대가 우리에게 남겨준, 많지 않은 비물질주의적인 자산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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