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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못다 한 말

등록일 2012-05-17 21:46 게재일 2012-05-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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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내가 사는 곳은 서울에서도 신촌. 신촌에서도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서강대교 방향으로 500m 정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나의 아침 행선지는 주로 학교, 집을 나서서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나는 즐긴다.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걷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살펴보는 게 또한 좋다.

아침 일찍 나오면 어느 때는 오전 7시 넘어서까지 밤새 일한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짐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내가 가끔 혼자 찾아가는 곳인데, 대여섯 군데 포장마차가 늘어선 중에 이 아주머니 집이 제일 늦게까지 연다.

보통 때는 이 포장마차들이 밤을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어물 좌판이 벌여져 있다. 갈치며, 고등어며, 낙지며, 자못 싱싱한 어족들이 얼음 덩어리들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저 어족들이 하루를 싱싱하게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는 때가 많다.

거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날마다 아침마다 나와 앉아 채소를 다듬고 앉아 있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이 분도 행상인데, 내가 보기에 보통 사람은 아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맑으나, 비가 오나 항상 나와서 한 번도 한 눈 파는 법 없이 부절히 손을 놀리는 모습은 마치 무슨 도를 닦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루는 어떤 손님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목격한 일이 있는데, 연세가 많이 돼 그런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단다. 긴 세월 햇볕을 쐬어 온 흔적이 얼굴에 역력해서 피부빛은 새까맣다고 해야 할 정도이고, 주름살이 그 얼굴에 가득 담겨 있지만, 표정만은 참 안온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또 조금 더 걸어가면 파출소 가기 전에 공원 있는 곳 앞에 포장마차가 하나 나와 있다. 아침이면 밥을 거르고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서 빵이 있고 우유가 있고 오뎅이 있는 포장마차인데, 이 집 역시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이처럼 가게를 열고 있다. 그 바로 옆에 공원 벤치에서 바둑 두는 할아버지들이 간식을 들 때도 꼭 이 집을 이용하는 모양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아침에 어디론가 나갔다 밤에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이 내 생활인데, 그러다 나는 시 한 편을 나도 모르게 지어내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신에게 못다 한 말 / 미안하다는 말 / 내가 살아오면서 / 함께 숨쉰 당신 / 이렇게 힘들게 버려두고 / 나 어디까지 멀리 헤매었는지 / 내가 웃을 수 있는 것 / 비행기 타고 멀리 떠날 수 있는 것 / 적상추에 밥을 싸서 /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 / 다 당신 때문인데 / 왜 이렇게 내겐 / 나만 중요했는지 / 미안하다는 말 / 이 말 하나 떠올리는데 / 내 걸어온 나날 전부를 걸도록 / 왜 그렇게 미련했는지 / 미안해 당신에게 /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 나와 함께 사는 당신 / 세상에서 가장 / 소중한 당신”

시는 본래 이렇게 인용해 놓으면 맛이 떨어지는데, 더구나 잘 쓰지도 못한 것을 옮겨다 놓으니 열적은 느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최근에 내가 열심히 새롭게 만나고자 하는`당신`에 관해 쓴 것이다. 나는 이 `당신`을 내가 걸어가고, 차를 타고, 머물러 있는 곳 어디서나 만나게 된다.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당신`이 걸어 나오는 것을 자꾸만 경험하게 된다.

내 삶이 나 하나 있어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나날. 나는 작은 `나`에 머무르지 않고 `나`를 확장해서 큰 `나`에 이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것은 나처럼 마음이 분명치 못한 사람에게는 힘든 과업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어떻게 하나.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을 이렇게 생각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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