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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생각

등록일 2012-05-10 21:31 게재일 2012-05-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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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봄 여행은 멋스럽다. 우리 산야는 하와이처럼 원색적이지 않지만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빛을 낸다. 겉으로만 보면 모르는 게 우리네 산야다. 가만 보아야 진정 아름답다는 걸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산야. 소박한 것 같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이 어떤 극치에 달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이 참 좋은 봄 여행이다.

병산서원 앞에 펼쳐진 강과 산과 모래밭의 절경은 여행 다녀온 지 몇 날이 되어서도 눈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화 장면처럼 아련하게 머물러 있다. 포장 안 된 시골길을 산모롱이 돌아 들어가면 문득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 그때 선비들은 마치 승려들처럼 산과 강을 바라보며 정신에 윤을 냈으리라.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길은 어느새 안동 하회마을로 이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나의 아름다운 감상은 방패연의 실이 끊어지듯이 허무하게 끊어져 버렸다. 하회마을을 본 까닭이다.

사진에 나오는 하회마을 전경이 하도 아름다워 그만큼 바라지는 않았더라도 내심 기대를 품고 마을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동구 내 골목길들이 다 시멘트 콘크리트 포장이다. 옛 사람들이 그렇게 포장 치고 살았을 리 없건만 목조 건물들이 대부분인 마을에 어떻게 어울리지도 못하는 콘크리트 포장이란 말인가. 내 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렸다.

집들은 토담을 해놓기도 하고 돌담을 해놓기도 했는데 이 담과 대문 사이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공사를 하다 만 것 같은 살풍경을 노출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충청도 예산군 덕산면 북문리의 시골 외갓집을 보아 왔기 때문에 옛날식 담장과 대문이 서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모습을 잘 알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서투른 장난을 해놓았단 말인가.

한옥들은 새로 개축들을 했는데 기와를 올린 것이 꼼꼼한 마감 처리를 한 것 같지 않아서 마음이 그렇게 서운할 수 없었다. 선인들도 기와가 처마 끝으로 이어져 끝날 때 그렇게 하얀 회칠을 해서 대충 막아놓았었는지? 좋은 기와를 잘 써나가다 끄트머리에 써야 할 막새기와는 왜 꼭 빠뜨려 놓았는지 그 심사를 알 수 없다. 그래서 좋은 기와 빛깔의 분위기를 `최종적으로` 망쳐놓고 마는 것이다.

놀이를 하라고 그네를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그 그네 모양이 참 가관이었다. 동네에 튼실하고 훤칠한 나무라도 있어서 거기에 춘향이, 이도령 그네를 타도 될 듯이 매 놓은 그네라기는커녕 전기톱으로 살풍경하게 툭툭 잘라놓은 것 같은 목재를 가져다 그네 시늉을 내 놓았던 것이다.

동네 전체가 무슨 원주민 모형 마을 같은 인상을 주는데 너무나 실망해서, 도대체 이렇게 돈을 들여 문화유산을 망쳐놓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 기묘한 문화유산에 영국 여왕이 다녀갔다는데 설마 이렇게 된 모양을 보고 간 것은 아니겠지, 이렇게 `단장`을 하기 전에 다녀간 거겠지,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까지 이니, 이것은 감상이 아니라 한탄이 되고 만 하회마을 유람.

옛날에 외국 사람을 데리고 절 정취를 보여주겠노라고 덕산 수덕사에 갔다가 부끄러워 혼난 적이 있다. 중흥불사를 한다고 옛날 소박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어찌나 망쳐 놓았는지 돈 있다고 다 되는 게 아님을 절감했던 것이다. 하회마을도 그와 같아서 돈보다 정신이 먼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한 사람의 국외자로서 당부하고 싶다. 다시 지금 들어간 돈의 몇 배를 더 들이더라도 골목길의 시멘트 포장 걷어내고, 조야하게 시늉만 내 놓은 한옥들, 기와며, 대문이며, 담장들을 다 옛 멋이 살아나도록 바꾸어 주었으면 한다.

안동, 영양. 참 굽이굽이 산야도 아름답고 동네도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하지만 하회마을만큼은 아니었다. 그 아름다운 자연에 감겨 안긴 하회마을이 이토록 조잡하게 변질되었을 줄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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