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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까

등록일 2012-04-19 21:34 게재일 2012-04-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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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하와이에 갔었습니다. 먼 곳이지요. 비행기로 갈 때는 여덟 시간, 올 때는 아홉시간에서 열시간. 가면서 날짜변경선을 지나가게 되는지, 수요일에 떠나도 여전히 수요일. 오면서는 토요일에 떠났는데 일요일이 되어 버리는 곳.

오아후 섬에 머물렀습니다. 호놀룰루 시가 있는 곳이지요. 하와이대학이 있구요. 화산이 있는 빅 아일랜드 같은 곳은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첫 날은 낮에는 한국학 센터에 들러 자료를 보고 저녁에는 하와이 대학 학생회관의 볼룸에서 열린 무라카미 하루키 낭독회에 참석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낮에는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열람해 보고 저녁이 되니 이곳에 교수로 와 있다는 선생님들을 만났던 거지요. 이상협이라는 경제학과 교수와 백태웅이라는 법과 대학 교수였습니다. 셋째 날에는 다시 해밀턴 도서관이라는 곳에 가서 한국학 자료들이 어떻게 모여 있는지 살펴보고 저녁에는 또 사람을 만났습니다. 안종철이라는 국사학을 공부하고도 그곳에 가 다시 로스쿨에 다니는 연구자를 만났습니다.

하루는 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녁에 와이키키 해변에 가서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내일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 새삼스러워 도대체 왜 사람은 이렇게 태어나 무엇인가를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답을 구하러 갔습니다. 옛날에 1990년대 전반기쯤 되었을 때지요. 그때 이상하게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한국 출판계에 불현듯 나타난 이 사내는 젊은이들의 영혼을 많이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고 다시 생각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지금은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를 직접 만나서 그가 말하는 것을 듣다 보면 뭔가 저만의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왕년의 이정로, 즉 백태웅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이제까지처럼 세계는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되어야 한다고 믿는 마르크시스트였습니다. 세상에는 살아가는 법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마르크스가 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살아가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쓰는 소설의 주인공이 살아가는 법, 즉 효인이가 살아가는 법입니다. 이 효인이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다. 우리들은 창조주에게서 나와 창조주에게로 돌아간다.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그 다음 행복한 것은 나자마자 죽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면서 이 지상에서의 덧없는 삶을 어떻게든 영위하려 애쓰며 살다 죽는다. 하지만 삶은 본래부터 텅 비어 있는 것이어서 무엇을 하더라도 의미 없는 것이다.

저는 마르크스가 되어야 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야 하는지, 효인이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해답을 구하러 갔지만 정작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조지 클루니가 주연하는 하와이 나오는 영화 `디센던트`를 봤습니다.

답은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데, 그 영화의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한국에 왔더니 이곳에서는 진흙같은 싸움 끝에 여권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진흙에서도 꽃은 필 거라고 생각해 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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