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손가정이란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직 어린 손자녀를 데리고 함께 사는 가정을 말한다. 대다수 조손가정은 형편이 어려운게 현실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혼자 살기도 빠듯한 살림살이에 학교에 다니는 손자녀를 뒷바라지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손자녀가 무탈하게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어떤 고생도 감내하며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간다.
그러나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는 손자녀가 말못할 고민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손자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회한에 밤잠을 설치고 적극 나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무능력에 가슴을 칠지 모른다. 더구나 손자녀가 또래 친구들로부터 시도때도 없이 두들겨 맞고 돈까지 빼앗겼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안동의 두메산골 마을에서 팔십의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조손가정 중학생이 바로 그런 피해를 당했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급생들과 선배로부터 지난해 여름부터 수차례주먹과 발길질을 당하고 통장으로 지급된 정부의 생계급여비마저 빼앗겼다는 기막힌 사연이다. 손자가 겪은 고통도 고통이지만 당장 살아갈 일이 막막하다는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심경에 기사를 읽은 누구나 가슴이 착잡하기는 매 한가지다. 콩 농사와 기초 노령연금으로 근근히 손자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조손가정에 생계보조 지원금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는데 때리는 것도 모자라 그것마저 가져갔다니 과연 배우는 학생들이 할 짓인가.
자신이 맞은 것보다 생활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죄책감이 더 큰 듯 할아버지 무릎에 머리를 묻고 흐느끼는 피해 학생의 모습은 애잔함을 넘어 이런 고통을 당할 때 까지 주위의 누구 한사람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현실에 화가 치민다.
울먹이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엔 슬픔을 넘어 80평생을 살아오며 듣도 겪도 못한 학교폭력이 자신이 사랑하는 손자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어쩌구니 없는 현실에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학교폭력따윈 난 잘 모르오. 단지 우리 손자가 오랜 기간동안 괴롭힘을 당했어도 누가하나 나서서 도와주질 못한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이요”
그렇다. 할아버지의 말처럼 손자가 그렇게 힘들 동안 학교와 교육당국은 무엇을 했는가.
그가 친구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생활비를 빼앗길때까지 학교와 교육당국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학생들의 집단폭행을 견디지 못해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더 가혹한 보복 폭행뿐이었다는게 사실이라면 학교폭력에 대한 해당학교의 안이한 대처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피해사실을 다 듣고도 고작 취한 조치가 훈계에 그쳤다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대응이다.
가해학생들의 집단 괴롭힘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조금씩 빼앗기던 푼돈은 급기야 수백만원으로 불어난데다 돈을 구해오지 못하면 수시로 맞을 정도로 괴롭힘의 강도는 갈수록 세졌는데도 훈계가 전부 였다는게 말이 되나.
교육당국은 이번 안동조손가정 학교폭력사건을 쉬쉬 넘어갈려고 생각해선 안된다.
피해학생이 이렇게 당하도록 방치한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손자를 소중히 키워온 할아버지의 세상에 대한 원망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