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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2-02-23 22:06 게재일 2012-02-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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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나이가 들면 돈 씀씀이가 헤퍼진다. 오늘도 아들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할 일이 있어 상담을 하고 검사를 했더니 비용이 정말 만만찮게 들었다. 이렇게 돈을 버는 일은 어렵고 쓰는 것은 헤프니 돈이 문제는 문제다.

나는 옛날부터 룸펜 기질이 넘쳐 돈 쓰는 건 많고 버는 일은 별로 하지 않아 생활에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렸을 때는 빚도 적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빚은 훨씬 더 많아졌다. 이런 식으로라면 직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빚을 다 갚지 못하겠다는 공포감까지 생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다 엄살이다. 대학 선생이 돈을 못 번다고 하면 누가 돈을 번다고 하겠는가. 세상에는 월급이 작은 사람이 참 많아서, 내 친구 하나는 그 작은 돈으로 어떻게 식구들이 살아가나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곤 한다. 또 어떤 친구 하나는 아예 버는 게 없이 남이 주는 걸로 살아가다시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 속에서 제법 돈벌이 잘 하는 사람이요, 앞으로도 내가 뭔가 결정적인 잘못을 벌이지 않는 한 그런 대로 생활의 자원을 벌어갈 수 있다고 생각도 한다.

그런데 그게 문제다. 어제 밤에 정년퇴직한 선생님이 평론집을 펴내는 자리에 갔다. 이 분이 말씀하신다. 정년퇴직을 하는 게 마치 죽음을 맞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그러던데 당신이 경험해 보니 정말 그렇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의 의미 안에 월급을 못 받는다는 게 하나의 내용으로 들어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하나의 공상이 생겨난다. 옛날보다 빚이 많으니 자꾸 그 빚을 가림 하려고 돈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는데, 과연 나는 그 옛날보다 가난하게 살아서, 더 부족해서 돈 걱정을 하나?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다. 뭔가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그 수준에 오르려고 돈 걱정을 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게 나도 모르는 강박관념이 되어 계산을 하게 만들고 전망을 하게 만들고 일을 꾸미게 만드는 것이다.

한 번 생각 해보았다. 다른 방법으로 사는 수는 없나? 예를 들어 내가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재화만을 빼놓고 그 나머지는 모두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는 생활을 만들어 갈 수는 없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 멋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러자면 참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숱하게 나타날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가실 날이 많은데 어떻게 부양하나? 아내나 아이, 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과연 나는 어떤 원조를 해줄 수 있나? 아니, 그런 것들보다도 나 자신만 해도 사실 남을 위해서 사는 것보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 데 열중인 사람은 아니던가?

내 친한 사람 가운데 유교적인 도덕적 이상을 중시하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은 가깝게 먼 사람은 멀게 대하는 것이 윤리의 기본이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이 말을 내게 여러 번 했는데, 아직도 나는 이런 `윤리 준칙`을 떳떳하게 받아들이는 게 힘들다. 왠지 모르게 이 유교적 `윤리 준칙`이라는 게 현대인의 이기주의나 협소한 가족주의를 합리화하는 말인 것 같은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나 자신을 생각해 보면 남들은 다 온힘을 다해 신경 쓰고 사랑을 바치는 가족을 위해서 무슨 특별한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니, 이 `윤리 준칙`을 부정하는 것도 남들은 몰라도 나 자신에겐 그리 떳떳한 일은 아닌 성 싶기도 하다.

돈은 역시 오늘날 사람들의 삶, 생활을 지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공상 같은 생각일지언정, 나만을, 내 가족만을, 내 민족만을 위하지 않는 돈을 상상하는 일은 이 험난한 경제난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과연 돈에 관하여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는지? 어제 나는 공상 속에서도 내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고, 점치고 싶은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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