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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으로부터 탈출

등록일 2012-02-10 21:28 게재일 2012-02-1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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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포항장성요양병원장

배고픔을 참는 것은 많은 고통이 따른다. 주린 배를 가진 사람이 느끼는 느낌을 다른 사람은 짐작할 수 없다. 당사자는 본능을 침범 당하는데, 주위의 사람은 본능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6·25 사변 직후 그때는 길거리에 거지들이 자주 보였다. 다 떨어진 옷을 입고서 깡통을 들고 동냥을 하는데 구성진 기락의 노래를 곁들여 했다. 그 노래가 요사이는 `품바`라고 하고, 거지를 `노숙자`라고 바꿔 표현한다. 단 노숙자는 과거와 같이 심하게 배를 곯지 않고 교육을 받았거나 유식한 자가 많은 것이 차이점이다.

과거에는 끼니를 걱정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나 그것을 운명으로 생각했고 열심히 일하면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요즈음에는 가난에도 개념이 바뀌고 있다. 전보다 GNP도 상승하고 교육수준이 많이 향상됐다. 그러면서도 이리저리 생활에 쫓기는 형편은 이전보다도 많이 열악한 상태다. 인구전체 평균 소득의 절반보다 더 적게 버는(예를 들어 전체 연 평균 소득이 4천만원이면, 연 2천만원 미만의 수입) 사람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상대적 빈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이 그룹에 속한 사람은 약 16%가 된다고 한다. 이러면 약 850만명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빈곤 양상의 특징은 빈곤의 범위가 매우 넓게 확장됐다는 것이다.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가난하게 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이제는 능력이 있어도 쉽게 가난 속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 때문에, 열심히 일할 의지가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가 많아졌다.

또 우리나라는 전세금 등 주거에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곳에는 많은 목돈이 필요하다. 의료에도 돈이 들어가지만, 특히 교육이 젊은 부부에게 허리를 휠 정도로 많이 들어간다. 옆집에서 교육투자를 많이 하는데 부모로서 자기 아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이 시대의 가난과 과거의 것을 비교해 보면, 근래에는 `밥은 먹고 사는데,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가 힘 드는 경우`다. 과거의 `생존`차원의 빈곤에서 요사이는 `삶다운 삶`으로 빈곤을 결정하는 영역이 바뀌었다.

고급 차를 타는 사람은 좋은 TV와 호화 저택에 살고, 고급 운동을 즐기지만 차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헐한 가전제품으로 열악한 전셋집을 전전한다.

생활은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곱의 철학`이 적용된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모든 가정에 필수소비제이다. 그러나 그것의 구입은 빈곤층에게 큰 부담을 준다. 그러면 정보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되고, 이러한 박탈감은 빈곤층을 코너로 몰아 부치게 된다.

또 이들에게는 `사회적 소외`가 문제로 된다. 과거에는 속칭 판자촌에서도 이웃과 함께 기쁨과 걱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대화도 없고, 끼리끼리 모여 산다. 특히 자력으로 상층부에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다. 심지어 가난하면 가족마저 해체돼 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빈곤층은 자신감을 잃게 되고, 무기력하게 탈진해 버린다.

이에 따라 더욱 더 가난에서 탈출은 점점 어렵게 된다. 빈곤의 대물림은 자꾸만 현실화된다. 자녀의 성장이 곧 빈곤에서 해방되는 시점이 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그 희망도 사라지게 됐다. 아이들은 벌써 부모의 경제력이 곧, 자신의 미래에 있을 사회적 위치를 만든다고 여기고 있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을 더 크게 확대시켰다고 생각된다. 이제는 삶에서 이긴 자와 패배자를 갈라놓은 상태로 되어 있다. 이런 갈라놓은 것을 재 봉합하려는 사업계획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한 부분이 복지 정책이다. 경제의 성장에 동반해 모두가 과일을 적절히, 합당하게 나눠 갖는 정책을 잘 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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