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는 가깝고도 먼 곳이다. 왜 그런가 하니 가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린다.
새벽 다섯 시 반에 KTX를 타고 서울역을 떠나 부산에서 다시 배를 탔다. 전날 밤 한 숨도 못잔 까닭에 기차 안에서도, 배안에서도 내내 잠이 쏟아졌다.
그런 중에도 배 뒤쪽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때도 있었다. 바다는 검고 윤이 나고 바람 때문에 자못 물결이 높았다.
이 바다를 건너 윤심덕도, 이광수도, 임화도 일본으로 갔다. 이상은 이 바다를 건너 도쿄로 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바다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바다는 꼭 살아 있는 거대한 물고기 같았다.
이 물고기는 크고
비늘은 파도
제가 성난 비늘을 어쩌지 못해
저는 잠들어 있을 때도
비늘은 늘 제 맘 가는 대로
일어섰다 누웠다
너울을 만든다
나는 이 물고기 비늘이 성나서 뱃전을 사납게 후려치는 나날들을 생각했다. 그런 나날이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늘 운명적이면서도 불행한 일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대마도 민심은 사나웠다. 일본에서 사람을 직접 접촉해서 밀치는 법은 여간해서 없는데, 이곳 통관 안내를 맡은 사람은 말도 없이 한국사람을 밀치곤 했다. 거리에서는 자가용차가 사람들이 건너가는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클랙션을 눌러대곤 했다. 호텔에서 안내를 맡은 여인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호텔 방 다다미엔 먼저 사용한 사람이 남겨놓은 머리칼 같은 것이 치워지지 않은 채 떨어져 있었다.
왜 이럴까. 나는 어쩐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대마도는 일본에서 잘 손이 안 가는 등짝 같은 곳이다. 그러니까 평소에 일본 사람들이 이 대마도를 알뜰히 손봐 줄 리는 없다. 도쿄나 오사카에서 대마도에 여행을 가느니 차라리 한국의 서울이나 부산에 쇼핑 관광을 올 것이다. 그만큼 여비가 비싸고 그것을 보상해 줄 만한 재미도 없다.
대마도는 지금 한국 관광객들이 먹여 살리는 측면이 강할 것 같다. 많은 돈이 관광객을 매개로 해서 한국에서 대마도로 건너갈 것이다. 주말마다 일반 관광객이나 낚시꾼들이 그곳을 찾아 돈을 남기고 돌아갈 것이다.
유사 이래 대마도는 한반도 없이는 잘 살기 어려운 지리적 여건에 처해 있었다. 그곳은 한반도에 노략질을 하거나 한반도에 세워진 조정과 거래를 하거나 일본 본토와 한반도를 중재해서 먹고살 방도를 찾았다.
그래서 대마도에는 한국과의 교섭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료들, 유적들이 많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구한말, 일제시대의 덕혜옹주와 대마도 번주의 아들 소 다케유키가 결혼했다 헤어진 이야기. 덕혜옹주와 시인인 소 다케유키는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었다. 그들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지만 그녀 역시 자살했다고 했다.
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이 하카다로 진격할 때 이곳을 경유해서 갔다고 했다. 임진왜란 때는 현소라는 중이 한반도를 몇 년씩 염탐했다고 한다. 왜란 후 국교 정상화 때는 국서위조 문제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대마도 사람들은 한반도의 인삼을 무역 중개해서 먹고 살기도 했다.
대마도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라는 자존심과 한반도에 기대야만 먹고살 수 있는 존재론적 위치 사이에서 스스로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 사람들은 `정상적인` 일본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짧은 여행 기간 내내 그런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잠에 취한 채 대마도 북쪽 섬, 남쪽 섬을 내리오르며 이 섬은 참, 고요하기도 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고요는 한국과 일본 사이의 파도 높은 현해탄의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섬은 현해탄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사연을 애써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