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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2-01-06 23:02 게재일 2012-01-0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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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락 포항장성요양병원장

`해거름에 만나자`라든가 `점심 먹고 한참 쉬다가 일하자`는 등은 시계가 없었을 때의 약속 방법이었다. 과거에는 시간이란 그저 소리 없는 흐름일 뿐이었다. 분이나 초 단위로 정확하게 왔다가는 사라지며, 돌이킬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사람들은 이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았었다.

그 후 시간이 흘러오면서 점차 인간은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회가 발달하고 복잡해질수록 그 시간 리듬은 그만큼 더 냉혹하게 되고 마음을 옥죄며 단위가 조밀해 졌다.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발표한 이래 사회생활에서 시간 개념은 점점 중요한 단위로 발전돼 갔다. 천주교는 드디어 천문학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교회의 캘린더를 수정했다.

시계의 발전은 놀라웠다. 2차 대전에서 한 독일 병사는 손목에 시계를 찬 상태로 물에 잠겨 죽어 있었다. 그의 시계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방수가 돼 있는 것을 발견한 세상 사람들은 스위스 시계를 최상의 상품으로 값을 매겼다. 그러나 그 후 전자시계가 나왔으나 스위스는 이 제품을 가볍게 여김으로서, 시계 산업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교통이 발전함에 따라서 시간의 통일이 필요했다. 드디어 1884년에는 국제 본초 자오선 회의에서 지구를 24개의 시간대로 나눠서, 표준시를 만들었다. 인간이 시간을 요리하던 것이 이제는 거꾸로 시계가 인간에게 박자를 지시하게 됐다. 시계의 알림에 따라 사람들은 일에 바빠지고, 그래서 평안을 모르는 사람들은 갈수록 시간 부족에 허덕이게 됐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경쟁을 벌여야만 하는 상대는 곧`시간`이다. 모방하는 후발업체가 더 새로운 상품을 시장에 내 놓는다. 한시도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이러한 경쟁논리가 인생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만연돼 있다.

디지털 정보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더욱 가속화에 시달리고 있다. 시간, 정보, 돈, 질병 등도 압축돼 있다. 공간도 동일조건이다. 주가 등은 시차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지구 위를 날뛴다. 인간은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노력을 포기할 줄 모른다.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제일 큰 원인은 언제나 더 편한 세상을 찾아 헤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모든 수고와 최선을 다해 이룬 성공이라도, 언젠가는 완전히 허물어 질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고뇌케 한다. 간혹 이런 느낌이 돌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면 우리는 멍한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더 빠른 접속을 할 수 있으면 그만큼 인생이 다채로워 진다고 믿는다. 집약하고 압축하면 그만큼 더 풍요로워 진단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될 수 있는 한 많이 채워 넣으려 시도한다. 정체나 허비하는 그 시간은 `멈춰 버린, 죽어 버린 상태`를 나타낸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 가를 알아보려면, 먼저 시간을 벗어나야 한다. 복잡한 현실과는 분리된 단절상태 속에 있어 봐야 한다.

자신의 페이스를 찾기 위한 심적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휴식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휴식을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무시한다.

휴식이란 시간의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오히려 그것을 요리하는 법을 알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된다.

살아가기 위해 시간을 난도질해 버렸지만 자기의 몫을 찾기 위해서는 조용한 명상,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저 끝없는 가속화로부터 탈피할 수가 있을까를 쉼을 통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때는 또한 영혼의 세계를 마주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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