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학생은 자신이 그동안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사연을 장문의 유서에 구체적으로 남겼다. 경찰조사결과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유서내용은 도저히 10대 중학생들이 한 짓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구타, 욕설에 이어 금품 뜯기, 숙제시키기, 공부 방해 등 수개월간 이어진 괴롭힘은 아마 어른도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욱이 자살학생에 대한 동급생들의 괴롭힘이 학교는 물론 집까지 찾아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자살학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에 대한 걱정과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잊지 않았던 심성 고운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도 여느 평범한 학생처럼 집에서는 부모님에게 응석을 부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것이 가장 즐거운 꿈 많은 청소년이었다.
그런 그를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몰아낸 학교폭력은 그가 다닌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은 이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국 대다수 초·중·고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뿌리 깊은 악습이다.
성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학교까지 서열화시키는 교육풍토에서 학생들에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실종도 이번 사건과 무관치 않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친구를 예사로 괴롭히는 10대들의 일탈이 일상화 된 현실에서 어쩌면 이런 비극은 예견된 일인지 모른다.
이번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다. 학교폭력의 유형도 갖가지다. 속칭 `생일빵`이란 듣도보도 못한 폭력은 할말을 잊게 만든다.
생일을 맞은 친구를 여러 학생들이 달려들어 흠씬 두들겨 패주는 관행이라고 한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는 커녕 주먹과 발길 세례를 하는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 아무런 제지도 없이 학교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주변엔 대구의 자살 중학생처럼 친구들로부터 이처럼 아무 잘못도 이유도 없이 몸에 멍이 들도록 얻어맞고 용돈을 빼앗기고 숙제를 대신 해주는 괴롭힘을 당하고도 하소연할 데가 없어 혼자 고민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교도 학교폭력을 쉬쉬하고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유관기관과 손잡고 정확한 실태파악을 통해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자살 중학생도 몇 번인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려 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포기했다고 유서에 적어놓았다. 선생님에게 피해사실을 알린다해도 가해 학생이 학교를 떠나지 않는다면 더 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할 엄두를 못낸 것이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보복에 대한 걱정 없이 학교폭력을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번 기회에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제도적 장치만 있었더라면 대구 중학생도 죽음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학교폭력은 이제 학교의 통제를 벗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만 맡기기엔 폭력의 수위와 정도가 도를 넘었다. 대구중학생 자살 여파로 교과부는 연 2회 학교폭력 피해실태조사를 발표하고 대통령은 범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지시하는 등 학교폭력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근본적 해결책 없이 유야무야 된다면 이번 자살 사건은 한 중학생의 자살로 그칠 뿐이다. 교육당국은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폭력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실효성있는 대책을 이번엔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