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 이후 2년여 만에 펴내는 네번째 소설집 `아령 하는 밤`은 2011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문래에서`가 수록돼 더욱 눈길을 끈다. 일상 속 불안과 악몽을 과감한 무늬로 직조해온 강영숙은 새 소설집에서 기존의 작품세계에서 몰두했던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에 대한 탐구를 한층 강하게 밀고 나가 완숙한 경지를 선보이는 동시에, 연대와 희망에 대한 모색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변곡점을 제시한다.
이번 소설집의 테마는 `도시`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다름아닌 `재해`로 가득한 도시이다. 재해로 뒤덮인 도시의 순례자로 나선 강영숙은 들끓는 욕망으로 번쩍이는 도시의 전면을 전복시키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문래, 강변북로, 광화문광장, 옥인동, 황학동 등 구체적인 지명들의 언급은 공포에 뚜렷한 원근감과 실감을 입힌다. 일찍이 그로테스크한 도시풍경을 소설의 주요한 장치로 활용했던 작가의 공간설정 능력은 이번 소설집에서 한결 무르익은 솜씨를 보여준다.
가령`죽음의 도로`에서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한 여성이 강변북로에서 자살을 감행하려다 실패하는 과정을 강박적으로 그려낸다. 강변북로를 배경으로 시시각각 세밀하게 변해가는 화자의 위태로운 심리묘사는 현대인의 히스테리컬한 일상을 소름끼치도록 완벽히 재현한다.
한편, `문래에서`는 구제역을 소재로 삼아 문명의 진보가 자초한 재앙을 건조하고 서늘한 문장으로 경고한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단편은 도시를 파고드는 재해의 기미를 예민하게 포착해 정공법으로 돌파하는 묵직한 작품이다.
이밖에도 이혼한 전 부인의 실종 후 그녀를 찾기 위해 도시를 배회하는 사내가 등장하는`불안한 도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불행이 재해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음을 설득력있게 전개하며, 악취가 끊이지 않는 오염된 공단지대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짓궂은 유머로 버무린`아령 하는 밤`은 강영숙 특유의 기이한 환상이 돋보인다. 표제작이기도 한 `아령 하는 밤`에서는 특히 범죄의 가해자임이 암시되는 노인을 향한 화자의 선망과 두려움의 초조한 혼재 속에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재해 자체보다 재해 그 이후이다. 대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오와가 배경인 `라디오와 강`과 허리케인으로 삶의 터전이 무너진 뉴올리언즈에서 펼쳐지는 `재해지역투어버스`는 탈국경적인 도시의 재앙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소설에서 무게를 싣는 쪽은 머나먼 이국의 재해현장 보고가 아닌, 재해 이후 사람들이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치유의 여정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