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안동시 남선면 현내리 바람티골에서는 해질녘인데도 서석용(76) 어르신이 경광등을 켜들고 논을 지키고 있었다. “요사이 멧돼지가 대여섯 마리씩 무리를 지어 출몰해 논을 망쳐놨습니다. 안 그래도 날씨가 나빠 소출이 줄게 된 판인데 말이요.”
어르신의 300여평 논은 마치 트랙터가 지나간 듯했다. 인근 박병찬(71)씨의 논 세마지기도 비슷했다. 산돼지가 밟아 쓰러뜨려 놓은 벼는 들쥐가 먹어 치운다고 했다.
가까운 원림리 권영태(70)씨 80여평 고구마 밭은 아예 멧돼지에게 내 줬다. 열흘 전쯤 한차례 훑고 지나가더니 이후 또 찾아와 다 파뒤집어버렸기 때문이다. 안동시청에 따르면 지난해 안동에서 신고된 멧돼지·고라니 등 야생조수 피해는 320여 농가 14만5천㎡에 달했다. 올해는 지금까지만도 벌써 400여 농가가 피해를 신고했다.
영양 경우 지난 8월 말까지 250여건 3만㎡의 피해가 신고됐다. 하지만 보상 제한 때문에 일정 규모 이상만 신고토록 하고 있어 실제로는 피해면적이 훨씬 넓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영양읍 감천리 과수농가, 일월면 가천리·용화리, 청기면 산운리·정족리, 석보면 소계리·화매리, 수비면 등 군 전역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영양 청기면 김기환(44)씨는 “열매가 제대로 여물기 시작하는 이달 말부터는 멧돼지들이 더 기승을 부릴 터여서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자 안동경찰서는 20명으로 구성된 야생동물피해방지단의 엽총 사용시간을 지난 19일부터 밤 12시까지로 늘려줬다. 영양군청은 11월부터 허용하려던 수렵을 앞당겨 가능케 하는 등 대응책을 서두르고 있다.
안동/권광순기자·영양/장유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