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름다운 양포항은 포항 장기면에 있는 어항이다. 오랜세월 벽지로만 알려져 있는 곳이 장기다. 그래서 장기는 조선시대 전쟁용 말을 기르던 곳으로 쓰였고, 긴 세월 정치적 유배지로 간주됐다. 조선시대에 100명이 넘게 유배왔다 갔다니 가히 짐작할 만 하다. 다산 정약용이 다녀갔고 우암 송시열도 그랬다.
특히 우암은 1675년 윤5월에 4년이나 장기에 살았다. 덕분에 장기 사람들은 그에게서 학문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장기는 `글 읽는 마을`로 변했다. 우암이 사약을 받아 세상을 떠난 뒤 장기현에는 그를 기리는 죽림서원이 세워졌다. 우암 송시열은 장기에 유배 살 때 은행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고 했다. 무엇을 기대했을까. 많은 세월이 흐른 후 그 은행나무 자리를 중심으로 학교가 하나 생겨났다. 1911년 9월1일 개교한 `장기보통학교`가 그것이다. 이 또한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학교다.
장기보통학교는 1940년대 말 `장기국민학교`로 개칭됐다. 그러면서 늘어나는 인구와 함께 번창하기 시작했다. 학급당 40, 50명이 넘는 아동들로 교실이 북적였다.
하지만 1970년을 전후해 시작된 나라 전체의 도시화는 장기국민학교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도시에는 학교가 부족해지고 농어촌 학교는 자꾸 비게 됐기 때문이다. 1996년 장기초등학교로 다시 이름을 바꿨지만 지금 규모는 전학년 9학급과 유치원 1학급으로 축소됐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장기초교가 배출한 졸업생은 무려 7천600명에 달한다. 행정고시 1명 사법고시 4명 등 고등고시 합격자도 5명이나 냈다. 차의과학대학교 박명재 총장, 김찬두 두원그룹 회장, 임채주 전 국세청장, `잡초골퍼`로 유명한 최호성 등이 장기초교 출신이다.
자부심으로 뭉친 총동창회는 이미 2년 전에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를 출범시켰다. 지난 3일 열었던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도 그렇게 해서 기획된 바였다. 모교 운동장에는 `수신위정`(修身爲正, 마음을 닦아 정도를 세운다)을 천명한 기념비를 세웠다. 졸업생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한 역사관도 만들었다. 다시 100년 후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졸업생·재학생이 각자의 소망이나 현재의 기념물을 담아 타임캡슐로 묻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김병관 위원장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과거를 돌아보고 앞날을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자 기념사업을 추진했다”며 “이런 일을 통해 동문들이 더욱 결속하고 화합해 학교를 세웠던 그 뜻을 이어 갈 것”이라고 했다.
/김남희기자 ysknh0808@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