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을 조금 여유 있게 갖을 때 까지는 우리는 갖는 만큼 더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일단 기본 생활이 보장되고 나면, 돈이 많아진다고 삶의 만족도도 비례하여 커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잘 납득하지 않으려 하는 곳에 있다. 돈은 있으면 있을수록 그의 속마음이 돈 생각으로 채워져서, 남을 도우려는 마음의 공간이 자연스레 줄어든다. 돈 자체는 악취를 풍기지 않지만,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의 마음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쉽다. 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그때에야 빈 마음이 되어 남을 도우려는 생각이 일어난다. 돈벌이에 집착되지 않고 상호 협조가 잘 되는 곳에서는 금전보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앞섬으로, 전체적으로 따뜻함과 안정을 보인다.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때 보다 부자가 되고 난후에 더 우울해 지는 경향이 있다. 부자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우리를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여 상대자 보다 내가 더 많이 가지기까지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나보다 잘 사는 자를 찾아내면 우리는 기분이 멍~해 진다. 우울해 진다. GDP가 제일 큰, 잘 사는 나라가 가장 행복한 나라인가? 서양의 선진국이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잘 사는가? 이는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다. 행복은 돈에 완전히 의지하는 게 아니다. 1972년 부탄국의 왕이 국민 총 행복량(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제창한 것은 험준한 산골의 나라지만, 국민의 행복이라는 면에서 볼 때,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인 것 같다. 바누아투라는 나라가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어느 곳이든 빈부 격차가 많은 곳에서는 사회가 불안하여, 삶의 질이 저하된다. 불안하면 제 아무리 돈이 많다하여도, 걱정이 생긴다. GDP에 못지않게 공정한 분배가 중요하다. 이것은 이웃 사랑의 정신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약 40년 전만해도 대구에서 서울까지는 기차로 약 9시간이 걸렸다. 그 후에 과학의 급진적인 발달로 이제는 100분 만에 서울에 도착한다. 빨래도 물가에서 힘들게 하다가, 이제는 버튼을 누르면 깨끗하게 되는 세탁기로 바뀌었다. 30여 년 전에 비해 임금은 약 6~10배 늘어났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은 엇비슷하다. 과학의 발달은 삶의 질 향상을 가져왔으나, 그만큼 사회 정보가 많아 졌다. 그것은 또 인간을 괴롭혀 피로하게 만든다. 더 넉넉한 삶인데도 점점 더 피로해 진다. 사람들은 남의 눈에 잘 띄는 사치품을 구매하여 과시하고 싶어한다. 일단 소유하면 그 사치품이 평범한 주변 사람들 것의 가치를 그만 떨어뜨려 버린다. 그러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에게 지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차는 가벼운 것이 연료 절약으로 좋다. 그러나 사람들은 큰 차를 좋아한다.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으시대기 위해, 꼭히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을, 어렵게 번 돈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필요한 물건이 한 없이 많다. 우리는 늘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나에게만 좋은 기회가 안 오는 것 같다. 행복하기에는 항상 돈의 부족을 느낀다. 그럼 돈은 인간을 꼭히 불행하게만 만드느냐? 아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다. 돈이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의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주위가 익숙한 곳에서 살며, 생각을 먼 곳에 둬라. 때로는 멀리 여행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현자는 `무형의 경험`에 투자하라고 한다. 또 한 가지의 방법은 당신의 돈을 남을 위해 쓰는 것이다. 거금을 쓰면 좋지만, 적은 액수도 관계없다. 자기에게 맞는 액수를 사용한다. 수많은 작은 행복이 하나의 큰 행복보다 나을 수 있다. 행복을 위해 자주 작은 일에 투자하라. 돈은 남을 위해 쓸 때, 가장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 `행복 투자`란 스스로 충분히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들은 가진 것이 적더라도 마음이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