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손手이 와서 선사시대 고분 안에 부장된 깨진 진흙 항아리나 청동세발솥의 표면에 새겨진 글씨들을 닦아내듯이 가만가만 흙먼지를 털고 금속때를 훔쳐 글씨들을 맑게 닦아내듯이 누가 내 오래된 죽음 안에 새겨진 글씨들을 맑게 닦아내 줬으면 좋겠다 내 몸이 쓴 글씨들을 육탈시켜 줬으면 좋겠다 내 몸을 저 어둠 속의 별빛들처럼 맑게 육탈된 글씨들인 채로 염습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 별빛들처럼 맑게 육탈된 글씨들인 채로 내 몸이 더, 죽고 싶다 사랑이여
사랑의 손길은 섬세하고 부드럽고 간절해서 그 어떤 것도 정화시켜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선사시대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 글씨들을 맑게 닦아내듯이 나의 주검에 새겨진 내 삶의 기록들 혹은 희로애락의 흔적들을 맑게 닦아내달라는(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시인의 육성에 깊은 울림이 스며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