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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동거녀 암매장 살해 사건 용의자 변심(?)은 “박 형사님, 그저 그 분 때문에…”

권광순기자
등록일 2011-05-26 21:29 게재일 2011-05-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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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안동경찰서 수사과에 들어서면 맨 왼쪽 구석진 곳에서 피의자를 앞에 두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강력1팀 박종배(41·경사·사진) 형사를 만날 수 있다.

여느 형사들처럼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모습 같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수사기법으로 피의자들마저 존경하는 베테랑 형사다. 최근 발생한 `안동 동거녀 암매장 살해 사건`에서 박 형사의 진가가 여지없이 발휘됐다.

수사가 본격 시작된 4월 초부터 지난 16일 범인 검거에 이르기까지 박 형사는 사건 용의자 K씨가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뀔 때까지 무려 16시간을 함께 지내며 마라톤 심문을 진행했다.

이 사건 직후 경찰은 K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소환조사까지 벌였으나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해 돌려보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박 형사가 투입되면서 `모르쇠와 오리발` 로 일관하던 피의자의 입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귀가 조치 직전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와는 별개로 둘만의 시간이 깊어지면서 실마리는 풀리기 시작했다.

박 형사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등 인간적인 대화로 K씨를 설득했다. 후일 잠적한 K씨는 박 형사의 설득으로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자살을 위장한 유서`에 암매장 장소를 정확하게 그려 경찰에 제공한 계기가 된다.

당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잠적한 K씨는 박 형사에게 새벽에 수시로 `대화 없는 전화통화`를 시도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것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K씨가 의도적으로 경찰 위치추적을 통해 포항의 한 방파제에 방치한 차량 속에 남겨 둔 약도를 찾아 암매장된 동거녀의 사체를 찾으라는 일종의 암시를 보낸 것. 이를 통해 안동시 남후면 야산에 암매장된 동거녀 A씨의 사체는 찾았지만 자살을 위장한 채 사라진 K씨의 동선은 이미 끊긴 상태였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이 사건은 지난 15일 박 형사에게 한 제보자가 찾아 오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공휴일인 이날 당직근무가 아님에도 박 형사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과 놀아줄 계획을 포기하고 경찰서로 향했다. 때마침 경찰서 인근에서 서성이던 결정적 제보자를 만나게 된다. 박 형사는 이 제보자로부터 K씨의 행방을 확인했고 이를 단서로 모든 상황은 끝이 났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에서 압송된 K씨는 도피중 암매장 약도를 왜 그렸냐는 질문에 “박 형사님 때문에, 그저 그분 때문에…”라며 고개를 떨궜다.

장태종 수사과 강력1팀장은 “어떤 부서에서도 무슨 일을 맡겨도 기획력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직업관이 워낙 투철하다보니 팀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권광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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