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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이역에서...김 상 웅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1-05-18 21:37 게재일 2011-05-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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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내의 발자국이 지나간다

그 겨울 간이역에서

허기를 채워 줄 기차는 아직 오지 않고

발자국 몇이 플랫폼에서 나와

늦은 밤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깡마른 후레쉬 불빛이 옮겨 다니는 길섶 측백나무

그 경계를 넘어 응달에 누운 가랑잎

어느 먼 간이역에서 떠나왔는지

눈이 내리기 전의 젖은 하늘처럼 지쳐 있다

모닥불 속에 새 장작개비를 얹어

실낱같은 연기에 자주 기침을 하던

한 사내가 일어선다

그저 대량 복사된 삐라처럼 흩날리다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사진첩이나 낡은 책 속으로 한 생애가 들어가듯

단단한 기억의 관솔이 타고 있는 불빛 속에

언뜻 내가 휘청거린다

세상의 모든 역은 그리움과 기다림이 서린 곳이다. 특히 간이역은 더더욱 그렇다. 간이역에 선 사람들과 그 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서려있다. 지나온 길들과 건너가야 할 먼길들이 끝없이 뻗쳐오는 철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젖어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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