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간이역에서
허기를 채워 줄 기차는 아직 오지 않고
발자국 몇이 플랫폼에서 나와
늦은 밤 공기 속으로 사라진다
깡마른 후레쉬 불빛이 옮겨 다니는 길섶 측백나무
그 경계를 넘어 응달에 누운 가랑잎
어느 먼 간이역에서 떠나왔는지
눈이 내리기 전의 젖은 하늘처럼 지쳐 있다
모닥불 속에 새 장작개비를 얹어
실낱같은 연기에 자주 기침을 하던
한 사내가 일어선다
그저 대량 복사된 삐라처럼 흩날리다
나뭇가지에 걸리거나
사진첩이나 낡은 책 속으로 한 생애가 들어가듯
단단한 기억의 관솔이 타고 있는 불빛 속에
언뜻 내가 휘청거린다
세상의 모든 역은 그리움과 기다림이 서린 곳이다. 특히 간이역은 더더욱 그렇다. 간이역에 선 사람들과 그 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가슴속에 아련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서려있다. 지나온 길들과 건너가야 할 먼길들이 끝없이 뻗쳐오는 철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젖어있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