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때 원오극근이라는 이가 평석(評釋:시가나 문장을 비평하고 주석 하는 일)한 `벽암집`은 선사들의 선문답을 모아놓은 `공안집(共案集)`이다. 송나라 때는 특히 황실의 보호를 받아 불교 그중에서도 禪宗(선종)이 번성하고 불교 서적도 활발히 출판됐다. `벽암집`도 그중 하나다.
육주(陸州) 땅의 용흥사(龍興寺)에 진존숙(陳尊宿)이라는 이름난 승려가 있었다. 진존숙의 말년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한 낯선 행려승을 보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그러자 그 행려승은 갑자기 으악 소리를 질렀다.
“허허, 일갈(一喝:한번 큰소리로 꾸짖음) 당하고 말았군”
진존숙이 이렇게 중얼거리자 그는 또 으악하고 말았다. 진존숙은 이번에는 그 소리를내는 행각승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른보기에는 제법 상당한 수행을 쌓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닳은 데는 있다. 그러나 옳은 것은 아직 아니다” 용두사미겠거니 승려 자신이 용과 같은 기품을 가진 인물인 양 애썼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느낀 진존숙이 이렇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으악 으악 하고 허세를 부리네만 3갈 4갈 한 다음엔 어떻게 이문답을 수용할 참인가”
말하자면 머리는 용이지만 꼬리는 뱀과 같은 인물 즉 허세뿐인 인물로 보였다는 뜻으로 물은 것이다. 그러자 그 행각승은 입을 다물었으니 결국 뱀의 꼬리를 보이고 만 일이다.
이로부터 용두사미란 말은 시작은 거창하지만 뒤로 갈수록 조잡하고 거칠어지는 일을 비유하게 됐다.
그렇다. 인간은 역시 속물인가 보다. 허영과 허세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성실과근면, 노력, 가족사랑을 실천해왔던 인품을 가진 고귀한 민족이었다. 농경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농부는 농사일에 최선을 다했고 선비는 어연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말보다는 실천하고 서로 나누는 품앗이 사회였다. 그러나 지금은 과연 어떠한지 물만 먹고도 배고픔을 참아내던 모습은 어디가고 물질만능주의에 인간의 본 모습은 사라지고 서로 속고 속이는 말하기 민망스러운 일들이 자주 발생 한다. 제발 이제 그만 하자.
이제부터는 허세의 누더기 옷은 벗어버리고 따뜻한 봄날에 진실된 마음의 옷으로 갈아입자.
/쌍산 김동욱
한국서예퍼포먼스협회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