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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탐스러운 생명

슈퍼관리자
등록일 2010-12-30 23:30 게재일 2010-12-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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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어디서 감을 얻어왔다. 그냥 먹으면 떫고, 며칠 우려 뒀다 단단했던 게 물러지면 먹어야 하는 감이었다.

감을 얻은 집에서 그랬듯이, 나 역시 이 감들을 현관 앞에 하나씩 가지런히 두고는 잠깐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 집을 나서는 내 눈에 무심결에 들어온 주황빛 감들! 아름답다 못해 탐스러웠다.

이 탐스러운 감을 보고 생각한 게 있다.

그렇구나. 비록 가지에서 떨어져 나왔어도 아직 생명이 가득 들어 있는 까닭에 이 감들은 이렇듯 탐스러울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구나.

그래서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냈다.

생명은 탐스럽다.

생명은 너무 아름다워서 탐스럽다.

연말이다. 이제 2010년도 남은 날이 얼마 없다. 며칠만 지나면 우리는 2011년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

그저께는 서울에 눈이 무척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아침이 되자 세상은 흰빛으로 눈이 부셨다.

대구에서 온 후배를 만나니 그곳에도 눈 천지였다고 한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적이 별로 없었단다.

온 세상을 흰빛이 감싸고 있다. 모든 것을 감싸 안은 눈처럼 우리 세상이 서로 이렇게 감싸주는 인정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이 올 수 있을까?

영국의 작가 D.H. 로렌스는 인류가 구원을 받으려면 그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개인들 사이의 내적인 유대를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개인이란 인류라는 전체의 부분이자 파편일 뿐이라고 했다.

개인이 개별성의 범주 안에 안주해 버리는 것은 삶을 개별자들의 투쟁으로 몰아가게 된다고 했다. 우리는 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전체의 부분들이며 이 본래적인 유대 관계를 회복해야 투쟁 없는 삶, 사랑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연 `나`란 무엇인가? `나`와 `너`는 이렇게 `나`라고 부르고 `너`라고 부르듯 단절된 개별적 존재들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려면 숨을 쉬어야 한다. 이 숨을 쉴 때마다 내 바깥의 것이 부단히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되고 있으며, 내 안의 것이 부단히 바깥으로 나가 내가 아닌 존재가 되고 있다.

내가 살아가려면 먹어야 한다. 내가 먹을 때마다 내 아닌 것이 부단히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되고 있다. 반대로 내 안의 것이 내가 아닌 세계로 배출되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다.

이 간단한 이치만 생각해 봐도 `나`란 고정된 실체가 아닌 것 같다. `나`라는 존재의 외투는 단단하고 두꺼워서 `나`와 `남`은 쉽게 뒤섞일 수도 없고 상대를 향해 습합해 들어갈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부단히 `나` 아닌 존재가 됨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나` 아닌 남이 부단히 내가 됨으로써만 내 삶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진실일 것이다.

그러니 `나`의 구원이란 일종의 허상과도 같다. 그것은 `나`만의 구원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면적 진실을 살펴보면, `나`를 구원한다는 것은 곧 `나` 아닌 `너`마저, 남마저 구원하지 않고는 남김없이 구원될 수 없는 영원한 사업인 것이다. 그러니 `나`를 구원하려면 `나` 아닌 존재들을 함께 구원하라. 이것이 당연한 귀결점 아닐지?

`나`와 `너`를, 남을 함께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삶을 나누고, 삶을 함께 하는 삶의 증진법인 때문이다. 저 주황빛 감처럼 살아 있어 탐스러운 생명들을 사랑하라. 그러면 `나`도 구원될 것이다.

눈이 담뿍 내려 세상이 아름답다. 이 탐스러운 하늘과 땅처럼 우리 인간 세상이 내년에는 한 차원 더 탐스럽게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더 탐스러운 생명의 유희를 펼칠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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