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9)씨는 1998년 1월 울산의 한 신용협동조합 전무로 승진해 조합 여유 자금을 투자하는 업무를 맡았다. 나름대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 주식시장 흐름을 읽을 줄 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그러나 `남의 돈`을 굴리는 처지에서 과욕을 부린 게 화근이 됐다.
김씨는 신협 규정을 어겨가며 원금 손실 우려가 큰 주식형 수익증권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규정상 여유 자금의 30%까지만 투자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 종종 어겼다.
결국 2000년 10월께에 이르자 투자금 88억원을 날린 사실이 명백해졌다.
부실대출 6억원까지 합하면 모두 94억원의 손해를 회사에 입힌 `역적`이 됐다. 노발대발한 이사진은 김씨를 문책하는 한편 배임 혐의로 형사고발 하겠다며 눈에 쌍심지를 세웠다.
향후 거취를 고민하던 김씨는 신협의 통장 잔고를 살폈다.
투자 실패 후 4개 증권사 계좌에 남은 잔액은 모두 35억원. 김씨는 이 돈을 모두 찾은 뒤 2000년 10월22일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달아났다.
중국에 도착한 김씨는 경찰 설명에 따르면 `현지 공안도 출입을 통제당할 정도로 비싼 저택`에 경비원까지 두고 잠시나마 `호화 은둔 생활`을 했다. 얼마간 죽은 듯이 지내면 사건이 잠잠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세인들의 기억에 앞서 갖고 있던 돈이 떨어졌다.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사람들도 나를 잊었겠지`라고 생각한 김씨는 중국 도심에서 방 세 칸짜리 집을 빌려 민박집을 차렸다. 관광객으로부터 받는 숙박비로 그럭저럭 입에 풀칠하며 지냈다.
그러나 한국 경찰에서 공조수사를 요청받은 중국 공안이 `불법체류하는 민박집 운영자가 있다`는 첩보에 근거해 김씨를 붙잡았다. 추방당해 18일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김씨는 기다리던 울산 중부경찰서 경찰관들에게 넘겨졌다.
김씨는 경찰에서 “`위험부담이 큰 만큼 수익도 큰 곳`에 규정을 어기고 투자를 했는데 결국 손해를 많이 봤다”며 “이사회에서 문책당하고 형사고발까지 당할 게 두려워 차라리 중국으로 도피하자고 마음먹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20일 김씨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