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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 정성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8-11 22:30 게재일 2009-08-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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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화끈해서 좋다. 땡볕을 쬐면, 얼음이 녹듯이 얼굴이 땀범벅이 된다. 여름이란 말은 열매를 뜻하는 `열음`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더운 여름에는 찬 음식이 대접받을 것 같지만 한여름에도 냉면집보다 보신탕집이 더 북적거린다.

열은 열로 때우는 치열한 도전정신 때문일 게다.

사람은 여름에 보신탕 장기복용으로 식욕이 상승하는 데 비해 한여름 견공(犬公)은 식욕이 통 없는지 말세인 복날이 염려되어선지 개식사가 비교할 데 없을 만큼 부진하다.

그냥 밥을 주어선 도통 먹지 않기 때문에 지극정성을 다한다.

굽이 높은 그릇보다 식사하기 좋은 그릇으로 밥그릇을 바꾼다. 물기가 많으면 잘 안 먹기 때문에 물기를 없애고 마른 건더기만 주기도 한다.

그래도 안 먹으면 하모니카를 불어주어 개 꼬리가 박자기가 되게 한다. 일류(?) 접대부 이상으로 없는 아양까지 다 떨면 개 밥그릇 밑바닥이 보인다.

정년 퇴직한 지 8월 말로 꼭 5년이 된다. 퇴직 후에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세월을 보내다 보니 지난 5년 세월이 50년이나 되는 듯 아득하다.

나는 퇴직하고 나서 할 일을 퇴직 전에도 한 것 처럼 가정경비원인 개를 내가 계속 책임지고 기르기로 했다.

개를 기르자면 아침, 저녁 하루 두 번 끼니를 돌봐주어야 하고 개를 가까이하면 개들도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고 재롱을 부리기 때문에 노후에 할 일로 이만한 소일거리도 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개 식사 개시 전에 한 숟갈 시식해보면, 내 요리 솜씨도 궁중요리사 수준(?)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정성과 솜씨가 이만한데도 여름의 잦은 개식사 부진 때는 공자 같은 나도 가끔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나는 사람이지만 내가 개에게 쏟는 정성의 십 분의 일도 다른 사람이 내게 해주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SBS의 인기 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만 35세가 된 개가 소개됐다.

개가 만 35세의 나이라면 사람으로 치면 일백세가 훨씬 넘는다. 이가 다 빠지고 피부는 비루먹고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학계에 인정된 통설로는 개의 수명은 만 15세가 최고라고 한다.

나의 경우, 개를 기른 것이 올해로 39년째인데 우리 집에 기른 개 중 가장 오래산 애견 `산적`이 만 12년 2개월로 종생기를 적었다.

그다음 오래 산 개가 `똘똘이`인데 만 9년 4월13일을 살고 눈을 감았다.

나 같은 지극정성의 애견가를 만나 10년을 넘겼지, 개를 무관심하게 키우면 1~2년 안에 끝장이 난다.

사람만 재주가 특출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개도 개성이 강한 경우가 많다.

집 나이로 13세를 산 `산적`이는 음악견이다. TV에서 명곡이 나오면, 가수(성악가)가 노래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따라 하고 저속한 대중가요는 착각으로라도 따라하는 법이 없다.

산적이는 불가에서 말하는 전생이 있다면 틀림없이 악성(樂聖)이었을 것 같다. `똘똘이`도 우리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로 죽을 때까지 10년 동안 우리 집 식구가 되었는데 신통방통한 것은 약을 앞에 놔주면 스스로 먹어서 개를 키우기가 아주 쉬웠다.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개 같은 놈`이란 욕설을 함부로 하지 말란 말이다. 40년 양견경력의 깨달음으론 웬만한 사람으로 인격이 견공의 충성심과는 비교도 안 된다.

얼마 전 작고한 K 추기경님 정도가 되면 견공(犬公)의 경지를 추월했다고 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견공을 스승으로 수범하여 인생수업을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개를 함부로 욕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개를 키운 적이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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