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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미술관 개관을 기다리며

슈퍼관리자
등록일 2009-08-06 11:29 게재일 2009-08-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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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는 빌바오라는 도시가 있다. 15세기 이래 스페인 최고의 철강도시였지만 80년대 제철산업의 쇠퇴와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로 폐허가 되다시피 했으나 `문화산업부흥`이라는 기치 아래 바스크 자치의회가 구겐하임 빌바오미술관을 세우면서 문화관광지로 기사회생했다.

20년 전 미국 워싱턴미술관을 방문했을 때다. 1941년에 개관되었다는 미술관의 크기에 놀랐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을 비롯하여 르누아르, 피카소 등 12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전 유럽의 회화작품과 미국 현대미술 등 명작만 3만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어 그 질과 양에 놀랐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오히려 보기 힘든 대작들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경제력을 실감하는 곳이기도 했다.

2차 대전 후 한창 어려울 때 유럽 여러 나라들이 팔아먹은 미술품을 보기 위해 그들이 도리어 워싱턴미술관을 찾고 있다고 했다. 또한 소장품들 모두가 꼭 어제 완성한 것 같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보존 관리하고 있는 것도 부러운 일이었다.

미술관 앞의 잘 꾸며진 넓은 공원에는 연일 수많은 관람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미연방수도라는 것 외에는 그다지 특징 없는 이 도시를 가장 미국다운 도시로 만든 것은 바로 이 미술관 때문이라는 설명이 꽤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때 나는 포항에도 워싱턴미술관 백분의 일만 되는 미술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했다. 그랬던 그 바람대로 비록 크기는 훨씬 못 미치지만 11월 하순이면 포항 시립미술관이 개관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국내에서는 도청소재지가 아닌 중소도시에 시립미술관이 개관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다. 진정 가슴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급변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는 빠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이곳 포항은 철강으로 성장하였지만 2천 년대에 접어들면서 언제까지나 철강이란 단일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시대적 변화가 예고되었다. 철강도시로서 진전은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조짐들이 급속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포항발전의 주체였던 포스코가 매년 구조조정으로 직원이 감소되면서 전체적으로 시 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포항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급조된 느낌의 도시인상 때문에 수십 년을 살았으면서도 더 이상 눌러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인구 감소로 이어졌다.

문화적 향수를 충족시켜 진정 살고 싶은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었고, 이러한 자각들이 포항미술관 건립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포항은 이제 철강도시라는 단일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도시로 전환되는 기로에 섰다. 영일만 항에 이어 배후산업단지인 경제자유특구가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포항은 국제물류중심의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도약해 나갈 것이다.

거기에 도심 재개발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새로운 관광도시로도 탈바꿈할 것이다. 이러한 위상에 어울리는 선진문화기반이 구축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바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들 가운데 포항미술관이 중심에 서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명이다.

이미 포항미술관을 이끌고 나갈 민간전문가 중심의 인적구성은 확보된 상태다. 그러나 완전한 민간주도형 운영체제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자율성을 갖고 독창성과 개성적인 미술관으로 위상정립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포항시가 충분히 검토하여 포항시의 복속기관이 아니라 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닌 기관으로 과감하게 독립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이곳은 통일신라시대 때 한반도의 중심이었고, 일본을 비롯한 세계로 뻗어나간 전진기지였다는 점에서 세계문화의 동향을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조하여 문화수출의 구심점으로 발전해 가야 한다.

앞으로 광역국제무역항으로 성장해 갈 포항의 문화적 욕구를 충분히 감당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설을 확충해 가면서 운영요원들의 정보력과 효율적인 기획력 등이 조화를 이루어 21세기 해양문화의 새로운 발원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포항미술관의 역할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제 개관하는 포항 시립미술관이 지금은 비록 작은 규모지만 이 지역과 우리나라의 문화, 나아가 세계의 문화발전을 주도하지 못하리라는 법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앞으로 우리 시민들의 깊은 애정과 관심이 끊이지 않을 때 분명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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